모종린 연세대 교수·'골목길 자본론' 저자

포스트 코로나 경제를 전망하면서 사회적 관심이 국내 여행으로 쏠리고 있다. 국제 이동이 과거와 같이 원활하지 않은 상황에서 국내 여행이 해외여행을 대체할 수밖에 없다. 실제 강원도 여행지의 숙박 예약이 여름까지 찼다는 소식이 들린다.

그런데 국내 도시가 밀려오는 여행자를 맞을 준비가 되어 있는지 의문이다. 해외 여행자를 유치하려면 2박 3일 체류 인프라가 기본인데 아직 이를 충분히 갖춘 국내 소도시를 찾기 어렵다. 더욱이 현지인의 일상을 체험하고 싶은 여행자가 늘어나는 트렌드를 고려할 때 체류 인프라는 도시가 아닌 동네와 마을 단위에서 구축해야 한다.

체류 인프라, 동네·마을 단위로 구축해야

다행히 2010년대 이후 지역 발전의 주체가 도시에서 동네로 전환되고 있다. 이제 동네가 브랜드가 되고, 브랜드가 된 동네가 지역 발전을 견인하는 시대다. 서울을 비롯한 전국 전역에서 브랜드 파워로 관광객뿐 아니라 창조 인재, 창조 기업을 유치하는 동네가 늘고 있다. 소도시의 작은 마을도 동네 브랜드를 꿈꿀 수 있다. 한국에서 브랜드가 된 동네는 공통적으로 골목 상권으로 시작했다. 지역 인재에게 도시 문화를, 외부 여행자에게 지역 문화를 제공하는 골목 상권 없이는 창조 인재 중심의 지역 발전이 어렵다. 골목 상권 조성에 많은 가게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2박 3일 여행자를 수용할 수 있는 상업 시설이면 충분하다. 작은 마을이라면 동네 전체를 '호텔'로 만드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다. 동네를 호텔로 구상하면 여행자가 2박 3일 체류하기에 무엇이 충분하고 무엇이 부족한지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이미 많은 마을이 전통적인 민박에서 벗어나 마을의 자원을 체계적으로 조직해 마을 전체를 하나의 호텔로 운영한다. 마을호텔의 대표적 모델이 일본 도쿄 야나카의 하나레호텔이다. 마을 중앙에 호텔의 로비 기능을 하는 하기소를 운영하고, 숙박, 목욕, 세탁, 식사, 자전거 렌털, 선물 등은 동네의 일반 업소에 위탁한다. 서울 서교동 로컬스티치, 서촌 서촌유희, 공주 봉황재, 정선 18번가 등이 동네 상업 시설을 연결한 한국의 마을호텔이다.

도시를 살리는 커뮤니티호텔

규모가 더 큰 지역은 로컬 문화 체험 프로그램과 주민과 여행객이 교류할 수 있는 라운지를 운영하는 커뮤니티호텔 중심으로 골목 상권 기반을 구축할 수 있다. 대표적 커뮤니티호텔이 미국 포틀랜드에 본사를 둔 에이스호텔이다. 동네의 라운지를 표방하는 이 호텔은 힙(hip)한 도시라면 하나 있어야 하는 앵커 시설로 떠올랐다.

에이스호텔은 도시를 살리는 호텔로도 알려져 있다. 이 호텔이 들어서면 호텔 주변으로 몰려드는 호텔 취향과 비슷한 가게들이 상권을 활성화한다. 스타벅스가 한 거리를 바꾼다면, 에이스호텔은 동네 전체를 바꾸는 것이다. 에이스호텔의 매력은 로컬 문화 체험이다. 입지 선정, 스토리텔링, 인테리어, 레스토랑과 바 메뉴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로컬 예술가, 크리에이터와 협업한다. 고객이 한곳에서 지역 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호텔을 디자인한다.

한국 호텔업계에도 커뮤니티호텔을 지향하는 기업이 나오고 있다. 제주 성산에서 시작한 플레이스캠프는 20∼30대 취향의 숙박과 상업 시설뿐 아니라 미술, 요가, 글쓰기, 칵테일, 아웃도어, 해양스포츠 등 지역 자원과 호텔 시설을 활용한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한다. 지역 크리에이터들이 참여하는 토요일 플리마켓도 지역 주민과 호텔 투숙객에게 인기다. 제주 베드라디오, 강릉 위크엔더스, 속초 소호259 등도 지역 커뮤니티와 연결된 참여형 프로그램으로 도시 여행자를 유치한다.

현지 문화 체험 제공해야 성공

위기에 빠진 지역에 희망을 주는 동네 브랜드와 골목 상권을 추동하는 힘은 체험 경제다. 최근 온라인에서 제공하지 못하는 오프라인의 감성과 경험을 중시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여행 트렌드도 이에 따라 자연과 역사에서 지역 문화로 옮아간다. 색다른 체험과 공감을 위한 로컬 여행은 명승지 위주로 여행하는 기성세대에게는 생소한 개념이지만 밀레니얼 사이에선 이미 보편적인 여행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체험 경제와 로컬 여행이 확대되면서 주민과 여행자가 교류하는 공유 숙박, 마을호텔, 커뮤니티호텔이 동네 경제의 중심으로 부상했다. 동네 자원을 연결하는 숙박 시설이 2박 3일 체류 인프라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로컬 여행 자원은 여행자만을 위한 인프라가 아니다. 동네에서 높은 삶의 질과 다양성을 원하는 주민도 수혜자다. 지역 산업의 영원한 숙제는 대기업이 제공할 수 없는 상품과 서비스를 발굴하는 일이다. 지역에서 진정한 현지 문화 체험을 제공하는 것은 지역 커뮤니티와 로컬 크리에이터의 몫이다. 아무리 자본력이 큰 대기업이라도 지역마다 지역 문화를 구현하는 호텔을 건설하기 어렵다. 지자체도 해외 테마파크 등 지역 문화와 동떨어진 관광 시설 유치보다는 지역 자원 개발로 승부해야 한다. 탈산업화 시대의 지역 발전은 지역의 생활 문화로 삶의 질을 높이고 인재와 여행자를 유치하는 동네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