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찾은 서울 혜화동 서울대병원 본관 1층 '생활치료센터 중앙모니터링본부'에선 의료진 15명이 서울에서 175㎞ 떨어진 경북 문경치료센터 환자들을 스마트폰 화상통화로 하루 2회 문진하고 약을 처방하고 있었다. 이곳에선 지난달 5일부터 이달 9일까지 대구·경북 코로나 환자 118명을 원격진료했고, 551건의 약을 처방했다. 고혈압약, 당뇨약, 소화제 등도 의사 처방에 따라 점심 식사와 함께 배달됐다. 대구에선 2월 말부터 코로나 확진을 받았지만 병실이 없어 자가 격리 중인 환자 수천명을 대상으로 대구 의료진 100여명이 전화 진료를 진행했다.

◇코로나가 물꼬 튼 원격진료

이 같은 코로나 환자 화상 진료는 정부가 비대면 진료, 소위 '원격진료'를 2월 24일부터 한시적으로 허용하면서 가능해졌다. 정부는 코로나 감염을 막기 위해 병원을 찾지 않아도 진료, 처방을 받을 수 있게 했다. 이후 4월 12일까지 이뤄진 원격진료·처방 건수만 10만3998건에 달한다. 아직 이로 인한 오진 사례도 보고되지 않았고 환자들 반응도 좋다.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1층 본관 ‘생활치료센터 중앙모니터링본부’에서 간호사가 스마트폰 화상 전화를 통해 경북 문경생활치료센터에 있는 코로나 확진자를 문진하고 있다(왼쪽 사진). 고려대 안산병원에 있는 의사는 경기 안산 ‘경기국제2 생활치료센터’에서 방호복을 입은 의료진과 화상으로 대화하고 있다.

그러나 코로나 이후 우리나라의 원격진료가 계속될지는 의문이다. 22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현행 의료법 체계 내에서 허용된 원격의료의 범위는 전화로 만성질환자에 대한 처방전 발급과 건강 상담 정도만 가능하다"며 "그 외 법 개정이 필요한 부분들에 대한 내용은 현재 긴급한 상황에서 고려할 여력이 없다"고 했다.

◇중·일은 원격진료 달려나가는데

국내 원격의료는 2000년부터 20년 동안 도서·벽지 등 환자를 대상으로 시범사업 형태로만 이뤄졌다. 2002, 2010, 2014, 2016년 네 차례에 걸친 의료법 개정 논의가 있었지만 모두 무산됐다.

반면 22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내놓은 '중·일 원격의료 현황과 시사점'에 따르면 중국과 일본은 각각 2014년과 2015년 원격의료를 허용했다. 중국은 코로나를 계기로 원격진료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중국 최대 원격진료 플랫폼인 핑안굿닥터(平安好醫生)는 코로나 이후 이용자가 11억1000만명에 달했다. 알리페이, 바이두 등 11개 업체는 코로나를 계기로 '온라인 의사 상담 플랫폼'을 만들었다. 중국은 원격의료 시장 규모가 39억달러(약 4조8000억원)에 달한다.

일본 정부는 코로나 확산 이후 전 국민을 대상으로 의사와의 원격 상담 창구를 설치했다. 라인 메신저 등을 통해 의사 진료를 받을 수 있다. 또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 승객도 앱을 통해 코로나 원격진료를 했다.

급성장하는 세계 원격의료 시장을 장악하기 위한 행보들이다. 세계 원격의료 시장 규모는 305억달러(37조5000억원)에 달하고, 성장률은 2015~2021년 연평균 14.7%에 달한다.

◇코로나 이후 원격진료 이어갈 방안 내야

코로나로 물꼬가 트인 원격진료를 코로나 이후에도 이어나가야 한다는 목소리는 정부 안팎에서 크다. 김봉만 전경련 국제협력실장은 "코로나를 계기로 원격진료 규제를 개선하고 시장 선점을 위한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내에선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적극적이다. 4차산업혁명위원회 관계자는 "코로나로 한시 허용된 원격진료를 점차 확대해 나가는 방향을 논의해봐야 한다"며 "국내 중증 환자나 재외국민으로 한정해 원격 진료를 우선 도입해 합법화하는 걸 주제로 다음 달 찬반 토론을 열 계획"이라고 했다.

그러나 개원가를 중심으로 한 의료계는 원격진료 도입을 반대하고 있다. 환자와 의사가 얼굴을 맞대는 '대면 진료'보다 효과가 떨어지고 오진 위험도 크다는 것이다. 대한의사협회 관계자는 "정부가 산업 관점에서 원격진료를 확대하겠다고 나서면 총파업도 할 수 있다"고 했다.

황희 분당서울대병원 교수는 "무조건 반대, 무조건 찬성 사이에서 국내 원격의료 도입 논의는 20년째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며 "디테일한 작은 것부터 풀어나가야 한다"고 했다. 그는 "고혈압·당뇨 같은 만성질환은 대면 진료 한 번 하고 다음은 비대면 원격진료를 하게 하거나, 처음 진단받는 환자는 원격진료가 불가능하게 하는 식으로 섬세한 조건을 갖춰 원격진료 도입을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