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현지 시각) 미 노스캐롤라이나 주도(州都) 롤리에서 주민 1000여명이 주지사 관저 등을 둘러싸고 시위를 벌였다. 노스캐롤라이나에선 여전히 코로나 신규 확진자가 하루 200~300명 발생하고 있고 이동금지령이 내려져 있는데도 시위대는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이들은 '내 일자리도 필수다'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쳤다. 먹고살 수 없으니 봉쇄령을 풀라는 것이다.

이날 미주리·앨라배마·플로리다주에서도 봉쇄 해제 요구 시위가 벌어졌다. 단순히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올 11월 대선을 염두에 두고 각 주지사에게 빠른 경제 재개를 요구하면서 지지층에 시위를 유도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봉쇄가 현실적으로 이들의 생계를 위협하기 때문이다.

CNBC방송에 따르면 2018년 기준 미국 가계의 절반 정도는 총저축액이 4830달러(약 600만원)를 넘지 못한다. 미국 가계의 30%는 저축액이 1000달러에도 미치지 못하고, 현재 20~30대인 밀레니얼 세대 절반은 저축액이 2430달러 이하다. 저축으로 한 달 버티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코로나의 역설… 자동차·공장 멈추자 숨통 트이는 지구 - 미 항공우주국(NASA)이 ‘지구의 날’인 22일 공개한 동북아 지역의 1월 1~20일의 이산화질소 농도 분포(왼쪽)와 2월 10~25일의 분포(오른쪽)를 비교한 지도. 이산화질소가 많을수록 짙은 주황색으로 표시됐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 확산하면서 중국에서 봉쇄 조치와 이동제한령이 본격 실시됐던 2월 사진에서 이산화질소가 줄어든 것이 보인다. 유독가스로 분류되는 이산화질소는 자동차나 화력발전소, 공장 등에서 주로 발생한다.

연방정부가 성인 1인당 최대 1200달러의 코로나 지원금을 준다지만 턱없이 부족하다. 게다가 미국에서 실직은 곧 의료보험 상실을 의미한다. 워싱턴포스트(WP)는 코로나 실직으로 최대 3500만명의 미국인이 의료보험을 잃을 수 있다고 최근 예상했다. 여기에 이미 의료보험이 없는 2750만명을 더하면 미국 인구의 5분의 1인 6000만명이 무보험 상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빵이냐 방역이냐를 놓고 고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미국만의 고민은 아니다. 최근 일주일(15~21일) 전 세계 하루 평균 확진자는 8만3000명으로 하루 3~4% 정도씩 꾸준히 늘고 있지만, 언제까지 방역을 내세워 경제를 닫아 놓을 순 없기 때문이다.

유럽 각국 정부는 서서히 봉쇄 완화에 들어갔다. 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는 21일 상원 연설에서 다음 달 4일부터 코로나 봉쇄를 일부 완화하겠다고 했다. 지난 2월 22일 북부 롬바르디아 지역 봉쇄를 시작한 지 두 달 만이다. 여전히 하루 3000명 안팎 신규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지만 일단 정점은 지났다고 보는 것이다.

하루 200명 가까이 확진자가 나오는 상황에서 덴마크는 지난 15일부터 어린이집·유치원·초등학교부터 개학을 강행했다. 영 일간 가디언은 "덴마크가 12세 미만 학생부터 개학한 것은 이들이 학교로 돌아가야 부모들이 일터로 복귀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프랑스와 네덜란드도 봉쇄 조치가 해제되는 다음 달 중순 초등학생부터 개학시키겠다고 발표했다.

빵과 방역을 놓고 저울질할 수 있는 서구 국가들은 그나마 사정이 낫다. 코로나에 대응할 의료시스템이 없어 봉쇄를 풀지 못하는 국가들에서는 생계형 시위가 잇따르고 있다. 인도 최대 경제 도시 뭄바이에서는 지난 주말 일용직 노동자와 빈민 수천 명이 봉쇄 연장에 반발하며 몰려나왔다. 이들은 '도시를 떠나게 해달라'는 구호를 외쳤다. 봉쇄 조치로 공장도 교통수단도 멈춰 서면서 일용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고, 그나마 고향으로 갈 수 있는 길도 막혔기 때문이다. 경찰이 몽둥이로 시위대를 진압했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볼리비아, 브라질 등 남미에서도 봉쇄령을 뚫고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가디언은 "남미에서만 1억1300만명이 빈민가에 살고 있는데, 이들에게 봉쇄된 도시에서 살라는 것은 불가능을 강요하는 것"이라고 했다. 국제노동기구에 따르면 하루 벌이로 연명하는 노동자가 세계적으로 20억명을 넘는다. 대부분 노점이나 허드렛일로 생계를 유지한다. 코로나 봉쇄로 일하지 못하는데도 거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레바논에서는 한 택시기사가 영업제한 위반으로 단속된 후 분노로 자신의 택시에 불을 지르는 영상이, 시리아에서는 난민 가장이 가족 생계를 책임지지 못한 것에 절망해 분신하는 모습이 소셜미디어에 퍼지고 있다. 파와즈 게르게스 런던정경대 교수는 WP에 "극도의 빈곤과 아사 때문에 발생하는 시위가 각 나라에서 동시다발 분출될까 두렵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