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또 졌다. 보수는 4년 전 총선에서 제1당을 내준 후 2017년 대통령 선거, 2018년 지방선거에 이어 이번까지 네 번 잇달아 선거에서 졌다. 이번 선거에서의 패배는 가히 역대급이다. 민주화 이후 선거에서 보수 정파의 의석이 제일 적었던 때는 2004년 국회의원 선거에서의 121석이다. 그러나 그때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대한 거센 역풍이 불었던 선거였다. 이번 선거에서는 2004년과 같은 격한 바람을 느낄 수 없었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 속에서 차분하게 치러진 선거였지만 미래통합당은 거의 몰락 수준으로 패배했다.

왜 이렇게 됐을까. 분명한 건 문재인 대통령이 '운'이 좋다는 점이다. 임기 중반에 치러지는 중간평가라는 선거의 의미가 초유의 전염병 사태로 크게 부각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경제가 위축되고 상점은 문을 닫고 일자리는 안 늘어나고, 북한은 계속 미사일을 쏘고 주변국 어디와도 잘 지내지 못하게 되었지만,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라는 눈앞의 위기가 이 모든 것을 다 덮어버렸다. 그러나 그 '운'으로만 돌리기에는 이번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얻은 의석수는 너무 많아 보인다. 민주당에 그 정도로 표가 몰린 건 문재인 정부에 대한 적극적 지지의 표현이라기보다 기존 보수 정치에 대한 강한 거부감으로 보아야만 설명이 가능할 것 같다. 문재인 정부에 아무리 실망이 크더라도 미래통합당은 더더욱 멀게만 느꼈던 많은 이들이 민주당에 표를 던진 것이다.

이번 선거 결과를 보면 보수 유권자들은 강하게 결집했다. 전통적 지지 기반인 대구, 경북은 물론이고 부산, 울산, 경남에서도 미래통합당 지지가 다시 높아졌다. 서울의 강남 벨트 역시 보수 세력에 대한 결집된 지지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게 전부였다. 이번 선거에서 미래통합당이 몰락한 것은 지지층이 이렇게 지역적으로 영남, 세대적으로 노령층, 이념적으로 '박정희 패러다임'의 강성 보수층으로 쪼그라들었기 때문이다. 충격적인 선거 결과가 보여 주듯이 이제 보수는 정치적으로 소수파, 비주류가 되었다. 보수 정치가 앞으로도 지금과 같은 모습이라면 향후 상당한 기간 동안의 선거에서도 승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번 선거를 앞두고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생각했던 구호가 '야당 심판론'이었다. 원론적으로 볼 때 대의민주주의에서 선거란 권력을 가진 세력이 임기 중 이뤄낸 정책 성과를 유권자들이 평가하고 심판하는 행사이다. 당연히 심판의 대상은 집권 세력이 되어야 하지만, '야당 심판론'이 제기되었고 거기에 공감한다는 응답도 상당히 높았다. 도대체 권력을 잃은 야당이 왜 심판받아야 할까.

이번 선거는 2017년 탄핵 이후 실시된 첫 번째 국회의원 선거이다. 20대 총선은 2016년 4월 실시되었지만 촛불 정국과 탄핵은 그해 가을 이후에 일어났기 때문에 20대 국회는 촛불 집회에서 터져 나온 민심을 원천적으로 반영할 수 없었다. 당시 촛불 집회에 보수, 진보 할 것 없이 그렇게 수많은 사람이 몰려나온 것은 박근혜·최순실 사건을 넘어 정치를 바꿔야 한다는 강한 염원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일차적 대상은 당시 집권 세력으로 그 사태의 책임을 져야 했던 보수 정치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후에도 보수 정치는 달라지지 않았다. 분당과 재통합이 이뤄졌을 뿐 실제 보수 정치의 그릇 속에 담긴 내용물은 예전 그대로였다. 선거를 앞두고 보수 통합을 이뤄냈다고 했지만 새로운 인물, 새로운 가치가 제시되지 못한 통합은 그저 예전 상태 그대로의 복귀였을 뿐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난 3년간 보수 정파에 대한 지지율은 20% 전후에 머물러 있었지만, 있지도 않은 '숨어 있는 보수, 샤이 보수'를 만들어내며 촛불 집회 이후의 변화된 현실을 부정했던 결과가 오늘날 이런 선거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야당 심판론은 이런 이유로 공감을 얻었다.

이젠 바뀌지 않으면 보수의 미래는 없다. 선거를 앞두고 박근혜 전 대통령이 옥중 편지를 통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했지만 사실상 전혀 먹히지 않았다. 이제 그 시대가 저물어간 것이다. 보수 정파가 다시 살아나려면 이제 보수를 이끌어오고 지켜온 박정희 세대가 젊은 세대에게 양보해야 한다. 이번 선거에서 미래통합당은 30·40대 유권자들에게 철저하게 외면받았다. 보수에 과거의 전통, 오늘의 질서는 대단히 중요한 것이지만 거기에 집착해서는 보수의 미래는 없다. 당 리더십의 과감한 세대교체를 통해 새로운 세대의 보수가 변화의 길을 열고 나갈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할 때이다. 보수는 이제 정말 맨 밑바닥에까지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