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볼라 바이러스(연두색)가 숙주세포에 달라붙어 있는 모습. 미국 연구진이 4종류의 에볼라 바이러스를 모두 예방하는 백신을 개발해 동물실험에서 효능을 확인했다.

전 세계가 코로나 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이는 가운데, 인류를 괴롭히는 또 다른 바이러스와의 전투에서 승전보가 날아들었다. 치사율이 90%까지 이른다는 에볼라 바이러스를 종류에 상관없이 모두 예방할 수 있는 범용 백신이 개발됐다는 것이다.

미국 신시내티 아동병원의 카르날리 싱 박사 연구진은 16일(현지 시각) 미국 미생물학회가 발간하는 국제학술지 ‘바이러스학 저널’에 “4종류의 에볼라 바이러스에 모두 효과가 있는 백신을 개발해 동물실험에서 효능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에볼라 바이러스는 치명적인 출혈열을 일으킨다. 평균 치사율이 50%이지만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최근 발생한 에볼라 출혈열은 치사율이 90%까지 이른다. 1976년 콩고민주공화국의 에볼라강 근처 마을에서 환자가 처음 발견돼 이 같은 이름이 붙었다. 과일박쥐에서 인간과 원숭이, 고릴라, 침팬지 등 영장류로 옮겨온 것으로 추정된다.

2013~2016년 서아프리카에서 또다시 치명적인 에볼라 출혈열이 발생하자 백신 개발 속도가 빨라졌다. 그 결과 자이르 에볼라 바이러스를 예방하는 백신이 개발됐다. 바이러스를 이용한 생(生인) 백신이다. 생백신은 인체에 해가 없는 다른 바이러스 유전자에 에볼라 바이러스 표면의 당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를 삽입한 형태이다.

에볼라 바이러스는 표면에 돌기처럼 튀어나온 당단백질로 숙주 세포에 결합한다.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가 표면의 돌기(스파이크) 단백질로 호흡기 세포에 결합하는 것과 같다. 생백신을 인체에 주입하면 몸 안에서 에볼라 바이러스의 당단백질이 합성돼 면역반응을 유도한다. 2018년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처음 사용됐으며 지난해 미국과 유럽에서도 승인을 받았다.

싱 박사 연구진은 “현재 개발된 생백신은 임상시험에서 고무적인 결과를 냈지만 아직 다른 에볼라 바이러스 종에 대해서도 교차 면역을 유도하는 백신은 개발되지 않았다”며 “이번에 개발한 백신은 단독으로 써도 되고 개별 에볼라 바이러스 종을 예방한 백신의 면역력을 증강하는 역할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에볼라 바이러스 구조. 길다란 몸통 안에 한 가닥의 유전물질 RNA를 갖고 있다. 표면의 당단백질(glycoprotein)로 숙주세포에 결합한다.

에볼라 바이러스는 지렁이처럼 길쭉한 형태이다. 지름이 80나노미터(㎚. 1㎚는 10억분의 1m), 길이가 800~1000㎚이다. 유전물질은 한 가닥의 RNA이다. 이번 백신은 구형의 에볼라 바이러스 유사 입자(virus-like particle, VLP)에 두 종류의 에볼라 바이러스 당단백질을 구현한 형태이다. 에볼라 바이러스는 표면에 있는 하나는 자이르 에볼라 바이러스의 당단백질이고 다른 쪽은 수단 에볼라 바이러스에 있는 형태이다. 바이러스 유사 입자 자체는 RNA가 없어 증식하지 않는다. 따라서 병을 일으키지 않는다. 대신 당단백질들이 면역반응을 유발해 나중에 에볼라 바이러스를 공격할 항체를 생성시킨다.

연구진은 새로 개발한 백신을 사람과 같은 영장류인 붉은털 원숭이에 주입했더니 인간에 감염되는 4가지 치명적 에볼라 바이러스에 대해 모두 강력한 면역반응을 보였다고 밝혔다. 당단백질은 두 종류의 에볼라 바이러스에서 왔지만, 각각의 당단백질이 두 종류의 에볼라 바이러스를 맡아 모두 4가지 바이러스를 막아낸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인류에게 신무기가 추가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