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 남자' 등 블록버스터 뮤지컬을 제작해온 EMK뮤지컬컴퍼니(대표 엄홍현)가 '모차르트' '몬테크리스토' '시스터 액트' 등 올해 예정된 공연 세 편에 참여할 협력사 7곳에 공연 비용 약 5억원을 선지급했다. EMK의 결단으로 협력사 직원 약 100명이 1~3달치 임금을 받게 됐다. '빌리 엘리어트' '마틸다' 등을 만든 신시컴퍼니(대표 박명성)는 코로나 사태로 지방 공연과 서울 앙코르 공연이 취소된 뮤지컬 '맘마미아!'의 배우·스태프 약 100명에게 취소된 공연의 인건비로 총 3억원 정도를 지난달 말 지급했다. 아직 티켓 판매도 안 한 공연의 협력사에 돈을 먼저 준다거나, 취소된 공연의 인건비까지 지급한다는 건 공연계에서 사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다.

사람이 모여 부대끼는 것이 본질인 공연계는 코로나 사태로 직격탄을 맞았다. 힘없는 협력 업체나 단역배우, 현장 스태프의 고통이 가장 크다. 굶는 사람 사정은 배고파본 사람이 제일 잘 아는 법. 흥행 실패도 경영 위기도 이겨내며 성장해온 EMK와 신시컴퍼니가 '코로나 보릿고개'를 함께 넘기 위해 결단한 것이다.

2010년 초연 때 뮤지컬 트로피 11개를 휩쓸었던 장기 흥행 뮤지컬 '모차르트'.

◇예정 공연 비용 5억원 협력 업체에 먼저 준 'EMK'

"직원 25명 두어 달치 월급은 주며 버틸 수 있게 됐어요." 가발·분장 전문업체 킴스프로덕션 김유선(53) 감독은 15일 통화에서 "31년째 이 일 하며 돈 떼먹고 도망가는 사람은 많이 봤지만, 아직 올리지도 않은 공연 비용을 먼저 주겠다는 기획사는 처음"이라고 했다. 문화음향의 이상인 이사도 EMK의 지원으로 고비를 넘겼다. 그는 "보통 한 달에 스무 건 정도 행사와 공연에 참여하는데 3월부터는 한 달에 서너 건도 어려웠다"며 "선지급받은 돈으로 직원 15명 급여를 두 달 정도는 줄 수 있을 것 같다"며 고마워했다.

EMK는 유럽 등에서 대본과 노래만 수입해 국내 상황에 맞게 재창작하는 '스몰 라이선스' 공연으로 성가를 올린 제작사. 회사의 10년 역사를 함께해 온 협력 업체들이 건강하게 버텨주는 것이 EMK에도 중요하다. 김지원 부대표는 "2006년 크게 실패한 뒤 몇 년 고생 끝에 2010년 '모차르트' 첫 공연을 올릴 때, 우리도 주변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래서 어려울 때 작은 도움이 얼마나 큰 힘인지 잘 안다"고 했다. "협력 업체 분들이 우리 작품에 재능과 노력을 투자해줘서 함께 성장할 수 있었잖아요. 조금이나마 보답하고 싶었어요."

한국 공연 15주년인 지난해 8월 1672회째 공연에서 관객 200만명을 돌파한 '맘마미아!'.

◇취소 공연 배우·스태프에게 임금 3억원 지급한 '신시'

12년 차 뮤지컬 배우 배수정(35)씨는 "공연이 망하면 그게 다 내 탓인가 싶어 돈 못 받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다. 공연이 취소됐는데도 출연료를 챙겨주는 건 처음 겪는 일"이라고 했다. 신시는 앙상블 배우, 현장 스태프, 뮤지션 등에게는 30%, 주연급 배우와 부문별 감독들에게는 10%의 인건비를 지급했다. "대표님이 스태프와 배우를 전부 모아 놓고, 선배들이 후배를 위해 조금 희생해달라고 설득하셨어요. 그 마음이 더 고마웠어요." 신수진(37) 음악 부감독은 "사실 얼마 챙겨주는지가 문제가 아니다. 공연의 부품이 아니라 함께 공연을 만들어가는 예술가로 대우해준 것이 가장 고맙다"고 했다. 신시컴퍼니는 2주 만에 중단된 연극 '나와 아버지와 홍매와'의 남은 공연에 대한 배우·스태프 개런티도 60%를 지급했다. 박명성 대표는 16일 "젊은 스태프와 앙상블 배우들이 공연 없으면 아르바이트 뛰며 사는 것 다 아는데, 이 친구들 얼굴이 눈에 밟혔다"며 "며칠을 고민했지만 이 길이 옳은 것 같더라"고 했다. "한 번 한 번 공연 올리는 게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이번에 더 절실히 깨닫게 됐어요. 이제 더 힘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