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에게 도덕적 치명상을 입힌 사건은 ‘광주 술판’ 사건이다. 2000년 5·18기념식 전야제 날 밤 광주 시내 술집에서 운동권 리더였던 사람들이 접대부와 함께 술을 마신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당시 이를 목격한 임수경 전 의원은 줄곧 ‘미친×’ ‘이놈의 계집애’ 소리를 들었다고 폭로했다. 한때 그를 ‘통일의 꽃’이라고 추어올린 사람들이었다. 이 사건 연루자 상당수는 지금도 민주당 중진으로 활동 중이다.

▶좌파 내지 운동권의 마초 본색을 이어받은 사람들이 '나꼼수'다. 이들은 2012년 비키니 차림 여성이 맨 가슴에 '나와라 정봉주'라고 쓰고 찍은 사진을 인터넷에 올리며 구속돼 있던 정봉주씨를 위한 '비키니 응원'을 독려했다가 비판을 받았다. 이들은 사과는커녕 "코피를 조심하라" "(그 여성의) 생물학적 완성도에 감탄했다"고 했다. 그러고도 "나꼼수를 통해 여성이 정치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며 특유의 시각을 드러냈다.

▶1982년생 변호사이면서 총선에 출마한 민주당 김남국 후보가 팟캐스트에서 상소리가 난무하는 여성 비하 발언에 맞장구쳤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는 "성과 결혼에 대해 솔직히 이야기를 나누는 내용이었다"고 말했다. 이 팟캐스트 진행자는 또 다른 1970년대생 변호사와 시사평론가다. 그런 이들이 모여 "빨아라" "따먹어라" 같은 소리를 하는 걸 듣고 앉아 있는 게 '성에 대한 솔직한 대화'라는 것이다. 이 사람 역시 검찰 개혁을 주장하는 '조국 백서' 집필진 중 한 명이다. 이들이 총선에 내건 대표 슬로건은 '깨끗한 인물'이다. '공정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이 구호다.

▶부천서 성 고문 사건 피해자인 권인숙 명지대 교수는 책 '대한민국은 군대다'에서 "80년대 학생운동 내에는 권위주의와 위계적 문화가 자리 잡혀 있었다. 여성 활동가들은 1980년대 내내 여성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다"고 했다. 민주주의와 정의·평등을 말하는 사람들이 여성에 대해서만큼은 철저히 마초인 경우를 많이 봤다. 일부 386 운동권의 폐습이 같은 진영에서 대물림되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다.

▶최영미 시인이 새 산문집에서 ’80년대 운동권 남성'들의 추악한 면면을 고발하며 사회 지도층이 된 이들에게 “민주주의? 자유? 평등? 혁명? 내 앞에서 그런 거룩한 단어들을 내뱉지 말라”고 일갈했다. 그는 문단 원로를 고발한 시 ‘괴물’에서 침묵하거나 동조한 우리에게도 책임을 묻는다. 시는 이렇게 끝난다. “괴물을 키운 뒤에 어떻게/ 괴물을 잡아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