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해외공작·첩보 활동을 맡은 모사드와 국내 첩보를 주관하는 신베트 등 이스라엘의 정보기관들이 '보이지 않는 적(敵)'인 코로나바이러스와 싸우는 데 총동원되고 있다고, 이스라엘과 아랍계 매체들이 보도했다.
인구 900만 명인 이스라엘의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자는 14일까지 1만1586명, 사망자는 116명에 달한다. 전세계적으로 볼 때, 막대한 피해국으론 분류되지 않는다.

그러나 미국 워싱턴 DC의 중동·아랍권 매체인 알-모니터에 따르면, 지난 2월초 이스라엘 보건부와 최대 병원인 쉬바 병원이 코로나 예측 모델을 세운 결과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지 못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이스라엘 내 인공호흡기는 2000대 미만인데, ‘최악의 시나리오’에선 약 1만 명의 심각한 환자가 인공호흡기를 필요로 했다. 이 시나리오에 따르면 5월까지 100만 명의 코로나 감염자가 발생하는데, 코로나 감염 진단 키트와 수술용 마스크, 미세 입자를 95% 걸러내는 N95 마스크, 보호안경 등도 모두 부족했다.

요시 코헨 모사드 수장


결국 요시 코헨 모사드 수장(首長)의 지휘 하에 쉬바 병원에 '워룸(war room)'이 구축됐고, 여기엔 신베트와 군의 첨단 첩보장비를 개발하는 유니트 81 등이 참여해서 인공호흡기 제작에 필요한 기술과 백신 관련 기술, 각국이 금수(禁輸)조치를 취한 의료 장비·물품을 획득하는 공작에 들어갔다.
특히 모사드는 3월17일부터 모두 50만 개의 코로나 진단 키트를 반입했다. 이와 관련, 일간지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3월27일 "모사드를 관리하는 총리실이 구입처를 밝히지 않아, 이스라엘과 공식 외교 관계가 없거나 적성국으로부터 들여왔을 가능성도 제기된다"고 보도했다. 쉬바 병원 워룸의 한 관계자는 알-모니터에 "재래식 무기, 핵무기 획득 경쟁을 벌였듯이 지금은 인공호흡기 획득 경쟁에 뛰어들었다"고 말했다. 덕분에 이미 27대의 인공호흡기가 특수 작전을 통해 이스라엘로 반입됐고, 추가로 수백 대가 이미 수송 과정에 있다는 것이다.

12일 이스라엘 북부 갈릴리 인근에 설치된 국가비상사태 드라이브스루 센터에서 의료요원이 운전자를 상대로 코로나 감염 테스트를 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이렇게 진단 키트를 해외에서 확보해 3월말부터 1일 수천 명씩 진단 테스트를 실시하고 있다. 또 국내 첩보기관인 신베트는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자의 휴대폰·신용카드 사용 내역을 역추적해 이들이 접촉했지만 자신이 감염 사실을 몰랐던 2차 감염자 500명을 추가로 확인해 격리 조치했다. 원래 신베트는 이러한 디지털 정보를 대(對)테러 활동 목적으로만 쓸 수 있지만, 내각의 승인을 받았다.

가장 혁혁한 공을 세운 것은 물론 모사드다. 뉴욕타임스는 13일 “모사드는 최대 숙적인 이란이 자국내 코로나와 싸우느라 당분간 이스라엘에 ‘임박한 위협’이 되지 못한다고 판단하고, 보건 상의 재난을 해결하는데 전력투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모사드의 요시 코헨은 쉬바 병원과 보건부로부터 필요한 의료 장비 목록을 받았고, 각국이 금수 조치를 내려 보건부가 정부 차원에선 구할 수 없는 의료 장비를 주로 무기 구입 루트를 활용해 습득했다고 한다. 인공호흡기 외에도, 지금까지 150장의 수술용 마스크와 수만 장의 N95 마스크, 보호장비. 보호안경, 의료품을 들여왔다. 이 과정에서 이미 다른 나라가 주문한 의료 물품·장비를 중간에 가로채는 ‘더러운 술수’도 동원됐다는 것이다.

육군 준장 출신으로 쉬바 병원장인 이츠하크 크라이스 교수는 “전세계에서 병원이 정보기관의 도움에 기댈 수 있는 나라는 이스라엘이 유일할 것”이라고 말했다. 모사드 수장인 코헨은 4월 중으로 모사드 요원들이 이스라엘이 최악의 시나리오에서 필요한 인공호흡기를 모두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자신했다고, NYT는 전했다. 모사드는 또 보호 마스크를 월 2500만 장 생산할 수 있는 라인을 구축하고 있다.

물론 모사드가 늘 ‘공작’에 성공한 것은 아니다. 독일에선 금수 의료 품목이 마지막 순간에 차단됐고, 인도에선 손 세정제의 세관 통과가 너무 지연돼 포기하기도 했다. 또 모사드가 팬데믹에 개입하면서, 주무 부처인 보건부 입장이 난처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뉴욕타임스는 “모사드가 보이지 않는 적과의 이례적 싸움에 나라를 구하려고 뛰어들었다는 것은 분명히 기억될 것”이라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