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인기를 누린 그룹사운드 '딕훼밀리' 원년 멤버인 드러머 서성원이 미국에서 사망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여파다.
가수 위일청은 13일 자신의 소셜 미디어에 "서성원 형님이 오늘 미국 LA에서 코로나19 때문에 돌아가셨다"고 알렸다. 그는 "인생이라는 말이 이렇게 가슴에 진하게 닿는 날이 저한테도 이제 하나씩 생기기 시작한다. 고인이 되신 형님에게 그리움을 전하며 이제부터는 하나님 곁에서 함께하기를 기도한다"고 애도했다.
가요계에 따르면 서성원은 코로나19 확산세를 보이고 있는 이달 초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코로나19에 감염, 치료를 받다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에서 세상을 떠났으나, 국내 연예계 출신 중 코로나19 관련해서는 첫 사망자다.
부인은 '날개'로 기억되는 가수 허영란이다. 그녀는 자가 격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은 사업을 위해 가수 활동을 접고 미국으로 떠났다.
딕훼밀리는 1970년대 초 결성됐다. 초창기에는 서울 청량리 '대왕코너' 같은 나이트클럽 위주로 활동했다. 서성원은 팀의 리더이자 드럼을 맡았었다. 1974년 내놓은 1집에서 '나는 못난이' '흰 구름 먹구름' '작별' 등이 크게 히트하면서 인기를 누렸다.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다음에 또 만나요'라는 노랫말의 '또 만나요'로 특히 잘 알려졌다. 당시 대다수의 다방, 분식집, 술집 등이 하루의 영업을 끝낼 때 이 곡을 사용했다. 지금도 대형마트 등에서 영업시간 종료를 알릴 때 '또 만나요'를 사용하는 곳이 많다.
박성서 대중음악평론가는 "딕훼밀리가 활동하던 시기에는 번안곡이 많은 편이었는데, 딕훼밀리는 창작곡으로 히트곡을 내 그룹사운드로는 독특하게 우리 대중가요 시대의 문을 열었던 팀"이라면서 "서성원 씨는 싱어송라이터로서 존재감이 부각됐다"고 기억했다.
박 평론가는 당시 정부의 언어순화 정책 탓에 딕훼밀리가 활동 후기에는 '서생원 가족'으로 개명한 사실도 전했다. 딕훼밀리는 파고든다는 의미의 영단어 '디그(dig)'를 붙여 '음악을 파고든다'는 뜻으로 지은 것이었다.
그는 "리더인 서성원의 이름과 학문을 파고드는 나이 많은 선비를 대접하던 말인 '생원'을 결합한 '서생원 가족'으로 활동하기도 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