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아웃백 한번 못 데려다 준 못난 애비 밑에서 잘 커 줘 너무 미안하다며 목놓아 울었다."

이렇게 시작하는 한 편의 글이 지난 주말 네티즌 심금을 울렸다. 글은 10일 오후 페이스북 페이지 '연세대학교 대나무숲'에 올라왔다. 가난한 집에서 가족들의 희생에 힘입어 어렵게 공부한 결과, 연세대 의과대학에 진학한 과거를 돌이켜보며 담담한 필체로 쓴 짧은 수기였다. 글에 따르면, 그는 다섯 살 되던 해 사고로 어머니를 잃었다. 식당 일을 마치고 돌아오던 길에 교통사고가 났다고 했다. 아버지는 소위 '노가다'로 불리는 공사판 일용직 노동자였다고 한다. 그는 "아빠는 피눈물을 흘렸지만, 애석하게도 아빠의 피눈물의 대가는 크지 않았다"며 "그냥 나와 내 언니와 아빠, 세 식구가 죽지 않고 살 정도였다"고 했다.

그러다 일이 터졌다.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아버지가 사고를 당했다고 했다. 그는 "난 더 이상 공부를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당장 나 하나 일을 안 한다면, 일 년에 한 번 새해를 맞아 다 같이 모여 먹는 두 마리에 8000원짜리 바싹 마른 전기구이 통닭을 못 먹게 되는 정도의 가난으로 끝날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때 작성자를 안아줬던 건 언니였다고 했다. 글쓴이는 '어떻게든 돈 벌어올 테니, 너는 공부해서 개천에서 용 한번 제대로 나 보자'는 언니의 말에 힘을 얻어 공부했고, 결국 수능에서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아 의대에 진학했다는 이야기였다. 글쓴이는 "오늘(합격 후)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웃백에 갔다"며 "랍스터를 먹는 나와 언니 모습을 본 아빠는 또 한 번 울었다"고 했다.

이 스토리에 사람들이 열광했다. 글엔 13일 오후 기준 4만3000명이 '좋아요'를 눌렀고, 4500번 이상 공유됐다. "개천에서의 용은 동화 속 얘기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노력해서 성공의 모습을 보여 주시네요" "치열하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되는 글" 등 댓글 1만1000개가 달렸다. 이 소식을 다룬 기사에도 댓글 수천 건이 붙었다. 조국 전 법무장관 자녀의 부정 입학 의혹과 비교하며 "장하다"는 내용으로 적은 댓글도 많았다. 연세대 의대 소속 한 교수는 "선배들이 응원하고자 한다. 본인이 연락해주면 고맙겠다"며 이메일 주소를 남기기도 했다.

이런 현상을 전문가들은 어떻게 해석할까. 성균관대 사회학과 구정우 교수는 "이는 한국인들이 '개천 용' 이야기에 목말라 있다는 방증"이라고 했다. "계층 상승 가능성이 줄어들면서, 지금은 상류층이 아니면 가기 어려워진 '의대'라는 상징적인 공간에 가난한 글쓴이가 합격했다는 스토리가 대중에게 카타르시스를 준 것"이라고 했다. 심리학적 공감 효과가 크게 작용했다는 해석도 나왔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모든 세대가 각자의 처지에 따라 이 글에 공감했을 것"이라고 했다. "어려운 처지에서 힘겹게 공부한 경험이 있는 장·노년층은 글쓴이의 가정환경에 감정이입을 했고, 최근 입시를 경험한 10~20대는 글쓴이의 수험 생활에 몰입해 동일시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학생이 실제 연세대 의대 학생인지는 불투명하다. 연세대 의대 측은 "글이 알려지면서 우리도 학생을 수소문 중"이라며 "글에 나온 것처럼 '재수하지 않고 정시 모집에 합격한 편부 가정 출신 여학생'은 아직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파장은 이어지고 있다. '연세대 대나무숲'에는 비슷한 자기 고백이 이어졌다. 12일에는 또 다른 학생이 "오늘따라 나도 힘들었다는 얘기를 할 용기가 생긴 것 같다"며 사연을 털어놨다. '아홉 살 때 택시 운전을 하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집안이 기울었지만, 결국 꿈꾸던 대학에 입학했다'는 내용이었다. 그 전날엔 "제 이야기 같은 글을 보고 가슴이 먹먹해졌어요"라며 '네 살 때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었지만, 초등학교 시절 학원에 살다시피 하며 수학 문제 500개를 매일같이 푼 덕에 과학고에 진학했고, 연세대에 입학할 수 있었다'는 내용이 올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