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경기도지사가 ‘공공 배달앱’을 만들겠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배달앱 시장 1위인 ‘배달의민족’이 중개 수수료를 인상하겠다고 발표했다가 난리가 나자, ‘공공앱’을 들고나온 것입니다. 인터넷에는 찬사가 넘칩니다. ‘시원하다’ ‘일잘한다’. 이런 반박도 있습니다. ‘네가 시켜 먹는 비용을 왜 내 세금으로 메우느냐’. 개인의 서비스 이용 비용에 왜 세금을 끌어다 쓰냐 하는 지적입니다.

좋은 서비스를 싼 가격에 누리자는 데 반대할 사람 없습니다. 그런데 행정조직이 나서서 직접 배달 앱을 만들고, 가격까지 통제하는 것은 과연 바람직한 일일까요?

이 문제를 들여다보기 위해, 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가 지난해 낸 책 ‘대변동’을 꺼내봅니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총균쇠’로 잘 알려진 저자죠. ‘대변동’은 다양한 국가의 ‘실패’의 원인을 진단한 책입니다.

책에는 살바도르 아옌데 전 칠레 대통령 얘기가 나옵니다. 아옌데는 1973년 피노체트 장군 주도로 군부 쿠데타가 발발하자 대통령궁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비운의 정치인입니다. 이 사람이 참 애민정신 투철한 인격자였습니다. 소탈하고 인정 많고 가난한 사람들 처지를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러니 많은 국민이 그를 사랑했습니다.

아옌데는 대통령이 되면서 자신의 정치적 이상 실현에 착수했는데요. "자본주의로는 빈부격차와 가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니 마르크스 주의로 가겠다"고 선언한 겁니다. 산업시설을 국유화하고 물건 가격을 하나하나 통제했습니다. 심지어 구두끈 값까지 나라가 정해줬습니다. 그런데 물건 값을 떨어뜨렸더니 오히려 시장에서 물건이 사라졌습니다. 참 아이러니하죠. 이런 정책이 혼란을 야기하면서 국민적 반발을 사다가 결국 군부 쿠데타의 빌미를 줬습니다.

비슷한 사례가 베네수엘라에서도 있었습니다. 이 나라는 전직 대통령 우고 차베스나, 후임 대통령 니콜라스 마두로 모두 인기영합적인 경제정책으로 나라 살림을 거덜낸 대표적 정치인들인데요. 안타깝게도 베네수엘라 국민이 이 두 포퓰리스트 대통령을 지금도 아주 좋아합니다. 차베스는 석유시설을 국유화하고 거기서 나오는 이익금을 국민에게 현금으로 살포했습니다. 그의 뒤를 이은 마두로는 아옌데처럼 물건 가격을 정해줬는데요, 가격을 낮추기 위해 군인을 동원한 사례까지 있습니다. 국민들 보라고 전자제품 매장에 군부대를 보내서 국가가 정해 준 가격표를 물건에 붙이는 쇼까지 펼쳤습니다. 당장엔 입에 단 게 좋다고, 많은 국민이 마두로를 향해 열렬하게 박수 쳤습니다. "국민을 진정으로 위하는 지도자구나"라고요.

우리는 지금 베네수엘라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산업 경쟁력은 바닥으로 추락했고, 시장에선 물건이 자취를 감췄습니다. 어떤 기업이 수지타산이 안 맞는 가격에 공장을 돌리겠습니까. 사람들이 쓰레기통 뒤지는 사진이 외신을 타고 전세계에 퍼졌습니다. 차베스와 마두로가 이런 결과를 의도하진 않았을 겁니다. 문제는 선의로 포장된 잘못된 정책이 국가와 국민을 어려움 속으로 몰아갔다는 사실입니다.

지금까지는 가격 얘기였고, 이번에는 민간이 창의성을 발휘해야 할 분야에 행정 조직이 나서는 행태를 짚어보겠습니다. 경기도뿐만 아니라 다른 지자체들도 수수료가 없는 공공 배달 앱을 이미 만들었거나 만들겠다고 발표한 곳이 있습니다. 이러다가 ‘한국배달공사’가 만들어지는 거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만드는 것까지는 가능합니다. 문제는 이 서비스가 과연 지속가능하냐는 겁니다. 그간의 사례들로 볼 때 쉽지 않습니다. 민간은 이윤이라는 동기부여가 있으니 죽기살기로 달려듭니다. 하지만, 공무원은 애초에 그런 동기부여가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애초에 국민 세금으로 공무원들 월급 든든하게 주는 건 배달앱 같은 거 만들라고 주는 게 아닙니다. 참고할 사례가 없는 것도 아닙니다. 서울시가 지난해 시작한 제로페이, 이거 사실상 실패입니다. 세금 150억원이 들어갔는데, 지난 해 이용금액이 고작 510억원이랍니다. 당초 목표의 1%도 못미치는 실적입니다. 참고로 현재 가장 많이 사용되는 페이는 월 거래액만 1조원 이상입니다. 경쟁이 안되는 거죠.

또 있습니다. 서울시가 승차거부를 막겠다며 도입한 s택시라는 콜택시 플랫폼이 있는데요, 출범 한 달 만에 서울시가 스스로 운영을 중단했습니다. 개발비만 날린 거죠. 이렇게 된 이유가 한결같습니다. "민간 앱이나 플랫폼과 비교하면, 사용이 너무 불편하다"는 겁니다.

공무원들이 성실하지 않아서 이렇게 되는 걸까요? 그 어려운 국가고시 합격한 머리좋은 사람들인데요? 공무원 중엔 사명감 갖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실패합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의 경제 칼럼니스트였던 팀 하포트가 쓴 ‘어댑트’라는 책을 볼까요. 국가가 모든 것을 관장했던 소련이 의외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많이 냈고, 공산당에서 국민을 상대로 포상금을 걸어가면서까지 창의적인 아이디어 개발에 힘쓴 사례들이 소개돼 있습니다. 하지만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하포트는 국가 주도의 계획경제는 변화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경제는 살아있는 생물이어서 시시각각 변화에 맞춰 적응해야 하는데 이게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는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까지 억압합니다. 처음엔 그럴듯하게 출범한 것도 차츰 시대에 뒤쳐지고 낡아버리게 된다는 거죠.

이재명 지사가 배달 앱을 내놓겠다고 하자 당장 "감독이 선수로 뛰느냐"는 지적이 나옵니다. 선수인 ‘배달의민족’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재난을 맞은 국민들에게 비용부담을 늘리려 한 것은 잘못됐습니다. 그렇다고, 감독이 선수가 되겠다고 운동장으로 뛰어 드는 일도 옳지 않습니다.

*유튜브로 보시면, 직접 책의 주요 부분을 직접 들려드립니다. 더 풍성한 컨텐츠를 원하신다면 상단 유튜브를 감상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