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나바시 요이치 아시아·퍼시픽 이니셔티브(API) 이사장 인터뷰 <1>

2013년 ‘일본 최악의 시나리오- 9개의 사각(死角)’라는 책이 출간됐다. 센카쿠 충돌, 국채폭락, 수도 직하(直下) 지진 등 일본에 닥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 9개를 예측, 대응책을 제안한 보고서였다. 당시 5번째 시나리오는 ‘팬데믹, 의사가 사라진 날’. 최근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세계적 현상인 인공호흡기, 의료진 부족을 놀랄 만큼 정확하게 예측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후나바시 요이치 API 이사장이 2013년에 팬더믹 등에 대한 최악의 시나리오를 모아 출간한 '일본 최악의 시나리오, 9개의 사각'

이 시나리오에는 팬데믹이 일본을 덮쳐 최악의 상황이 되자 의사가 “(생존확률이 적은) 따님의 인공호흡기를 양보해 달라”고 하는 장면이 나온다. 또 “1년 이상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는 환자는 호흡기를 떼서 신규 환자에게 제공”하는 상황도 묘사돼 있다. 의료진 부족으로 인한 의료 붕괴, 미숙한 행정체계 등 전 세계에서 동시적으로 발발하는 상황이 예측돼 있다. 이 시나리오를 총괄했던 후나바시 요이치(船橋洋一) 아시아·퍼시픽 이니셔티브(API) 이사장(전 아사히 신문 주필)을 9일 그의 도쿄 사무실에서 만났다.

― 당시 시나리오는 어떤 취지로 만들게 됐나
"2011년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이 계기였다. 이를 계기로 일본에서 닥칠 수 있는 최악의 위기상황을 가정한 시나리오를 만들어 제안하려고 각 분야 전문가들로 구성된 프로젝트팀을 발족시켰다. 당시 외무성 등의 정부 관계자들도 익명으로 참가했다."
― 7년 전 예측했던 팬데믹 시나리오가 인공호흡기 부족으로 유럽이나 미국에서 발생하는 현상과 너무 비슷해서 놀랐다.
"얼마 전 유럽에서 오랫동안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던 고령의 환자 가족에게 의사가 울면서 이제는 인공호흡기를 양보해 달라고 한 것이 보도됐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실제 그런 상황이 나타나는 것이 안타깝다."
- 보고서를 만들 때 팬데믹은 얼마나 중요한 문제였나.
"솔직히 말해서 최우선 순위는 아니었다. 2003년 사스 사태에서 일본은 큰 피해가 없어서 센카쿠 열도에서의 충돌, 재정, 인구 문제 그다음 정도의 순위였다."
―보고서에는 2009년 돼지 인플루엔자가 확산됐을 당시 일본 정부가 최대 65만명이 사망하는 시나리오를 만들었다고 나오는데.
"당시 일본 정부가 비공개로 그런 시나리오를 만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후, 사스 사태 때 큰 피해가 없어 치밀한 준비가 부족했다."

후나바시 요이치 API 이사장이 2013년 출간한 일본 최악의 시나리오 중 팬더믹 상황에 대해 말하고 있다



- 의료 관계자들의 부족 문제도 제기했는데.
"일본은 OECD 국가 중에서 의사와 병상 수는 한국의 다음 정도쯤 될 것이다. 문제는 기동력이다. 코로나 감염 여부를 판단하는 유전자 검사(PCR)가 신속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 시나리오는 이번 사태에 어떻게 활용됐나.
"7일 일본 정부의 긴급사태 선포에 앞서서 지난 2월 홋카이도가 발 빠르게 움직여서 3주간 긴급사태를 발령했다. 홋카이도의 스즈키 나오미치(鈴木直道)지사가 이 보고서에 영향받아서 긴급 조치를 취한 것이다."

―아베 내각의 이번 긴급사태 선포는 어떻게 보나.
"약간 늦었다. 지난 2월 말 학교 일제 휴교 당시 긴급사태 선포를 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결정적으로 늦은 것은 아니다."
―지금의 위기를 넘기더라도 새로운 전염병이 나올 가능성이 거론되는데.
"앞으로 새로운 형태의 팬데믹이 발생하는 것은 분명하다. 이는 기후변화와도 관계가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최대한 여기에 대해서는 대비할 수 밖에 없다."
― 각 국가와 시민은 어떻게 대비해야 하나
"앞으로 '비접촉(非接觸) 경제태세'를 만들어 갈 수밖에 없다. 서로 접촉을 최대한 줄이면서 경제생활하는 것이다. 이제 코로나 사태로 화상대화 하는 줌(Zoom)이 급속히 활용되는 '줌크라시(Zoomcracy)' 시대로 접어들었다. 서로 직접 대면접촉하지 않고도 일하고 대화하면서 경제생활하는 것이 '뉴 노멀(새로운 규범)'이 될 것이다."
― 이런 위기 상황을 역이용하는 방안도 있나.
"현 상황을 냉소적으로 말하자면 코라나 바이러스가 인류를 구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기후변화에 의해서 인류가 멸망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코로나 바이러스로 온난화가 기술적으로는 정지된 상황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 이산화탄소 배출이 줄고 있다. 그런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 후나바시 이사장 인터뷰 2편은 10일 게재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