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보건기구(WHO)가 8일(현지 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향해 “바이러스를 정치 쟁점화하지 말라”고 했다. 전날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 감염증 확산과 관련, WHO에 대해 “매우 중국 중심적”이라며 미국의 자금 지원 보류를 검토하겠다고 압박한 것에 대해 정면 반박에 나선 것이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이날 스위스 제네바의 WHO 본부에서 열린 화상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비판에 대한 질문에 “만일 더 많은 시신 포대(body bag)를 원한다면 그렇게 하라”며 “그렇지 않다면 정치 쟁점화하는 것을 삼가라”고 했다.

이어 “국가와 글로벌 차원에서 균열이 생기면 그 때 바이러스가 성공하는 것”이라며 “미국과 중국은 함께 이 위험한 적과 싸워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손가락질하는 데 시간을 낭비해선 안 된다. 그건 마치 불장난과도 같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WHO 분담금을 보류하겠다고 한 발언에 대해서는 미국의 지원이 계속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는 “지금까지 미국이 많은 지원을 보내준 데 감사하다”며 “미국은 자신의 몫을 계속 기여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백악관 코로나 대응 정례 브리핑에서 “WHO는 나의 (중국) 여행금지 조치를 반대하고 비판했다”며 “매우 중국 중심적”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WHO는 잘못 짚었다. (코로나를 사전에 막을) 시점을 놓쳤다”고 했다. 이어 미국이 WHO의 최대 자금 지원국이라는 점을 들며 “WHO에 쓰는 돈을 보류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미국의 WHO 분담금은 세계 최대로 지난해 4억달러(약 4800억원)를 넘어섰다.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백악관이 이미 2021년도 WHO에 대한 기여금 예산을 올해(1억2200만달러)의 절반인 5800만달러로 줄여 의회에 요청해 놓았다고 보도했다.

일각에선 WHO가 그동안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 코로나 사태에 미온적으로 대처했다는 평가가 제기돼 왔다. 에티오피아 보건부 장관 출신인 테워드로스 사무총장이 2017년 중국의 지지를 받아 선출돼 그동안 “중국이 코로나 사태에 대처를 잘하고 있다”며 옹호해 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자금 지원 중단 압박에 대해선 미국 내 코로나 확산 책임을 WHO에 일부 떠넘기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