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3일 중국 광둥성 둥관(東莞)시에 있는 완구 제조 업체 판다(泛達)가 회사 설립 28년 만에 문을 닫았다. 판다는 북미와 유럽 업체로부터 일감을 받아 완구를 제조하는 하도급 업체로 생산라인 직원만 1200명이 넘는다. 판다는 이날 "코로나 여파로 해외 기업과 계약이 모두 취소되면서 폐업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둥관에 있는 시계 제조업체 징두(精度)도 미국 시계 업체 파슬의 주문이 전부 취소되면서 생산을 3개월 중단하기로 했다.

'세계 공장'인 중국이 '코로나 2차 충격'에 휘청거리고 있다. 중국 내수는 신규 환자가 급감하며 다시 움직일 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수출 제조업체들은 주요 고객인 미국과 유럽 등의 사정이 나빠지면서 충격을 다시 받고 있는 것이다.

바이러스 근원지인 중국은 1월 말부터 3월까지 확진자 수가 급격하게 늘었으나, 최근엔 진정세에 접어들었다. 우한시에 대한 봉쇄도 8일 해제했다. 이에 따라 중국 내수 소비는 베이징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8일 "중국인들이 다시 쇼핑에 나서고 있다"고 보도했다. 코로나 이전으로 바로 돌아간다고 볼 수는 없지만, 완전히 스톱돼 있던 중국 내부 경제가 움직임은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봉쇄 해제된 우한의 둥펑혼다 공장 - 중국 내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세가 잦아들면서 베이징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소비 회복 조짐이 보이고 있다. 하지만 미국·유럽으로 코로나가 확산하자 중국의 수출 제조 기업은 해외발 주문 가뭄으로 줄도산 위기에 처했다. 사진은 8일 도시 봉쇄가 해제된 중국 우한시의 둥펑혼다 공장에서 근로자들이 차량을 생산하는 모습.

반면 중국에서 시작된 코로나가 전 세계로 확산하면서 중국 제조공장의 주 고객인 해외 기업들이 올 스톱됐다. 중국 대표 제조 허브인 광둥성·저장성·선전시 같은 공업도시들이 '딩단황(訂單荒·주문 가뭄)'에 시달리게 됐다. 중국 시나닷컴은 "이동 제한과 도시 봉쇄에 따른 생산 차질과 농민공 실업이 1차 충격이었다면, 해외 물량 감소에 따른 무역 기반 기업의 줄도산이 2차 충격"이라고 분석했다.

◇中 기업, 해외 수주 절벽

중국 기업 정보 업체 '톈옌차(天眼察)'가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코로나 영향으로 지난 1분기 중국에서 46만개 기업이 문을 닫았다. 올 1분기 새로 등록된 법인은 총 320만개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9% 감소했다. SCMP는 "이대로 갔다간 중국은 1976년 이후 처음으로 경제 역성장을 기록할 위기에 처했다"고 했다.

중국 공업정보화부에 따르면 2월부터 본격적인 업무 복귀에 돌입한 뒤 3월 28일 기준 중국 대기업 가동률은 98%에 달한다. 중소기업의 업무 복귀율도 76%까지 회복됐다. 하지만 프랑스 소시에트 제네랄의 이코노미스트인 야오웨이와 미셸 람은 "중국 내수 시장에서 물품 공급을 막는 장애는 거의 사라졌지만, 해외에서 코로나가 확산하며 외부 충격을 고스란히 받고 있다"고 평가했다. 중국 이우시의 한 대형 의류 제조업체 대표는 "아디다스, 나이키, 코스트코 등 주요 고객사가 4월 이후의 주문을 모두 취소하면서, 올해 예상했던 물량의 70%가 날아갔다"고 말했다. 중국 신경보(新京報)는 "무역을 기반으로 하는 모든 기업이 비상시기에 봉착했다"며 "코로나 전반전을 버틴 기업이 이제는 후반전을 치러야 하는 격"이라고 보도했다.

세상의 모든 전자기기 짝퉁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선전시 '화창베이(華强北)'도 상황은 비슷하다. 이곳의 한 IT 기기 제조기업 사장은 중국 현지 매체 인터뷰에서 "해외 바이어가 언제 물량을 취소할지 몰라 두렵다"고 말했다. 광둥성 둥관시의 경우, 미국과 유럽에서 들어오는 주문은 전체 생산의 40%를 차지한다. 이 도시들에 있는 제조기업들은 길어도 5월까지 버티는 게 한계라는 분석도 나온다.

◇대도시 중심 내수 회복 조짐

중국 입장에서 그나마 국내 경제가 돌아가기 시작한 것은 다행이다. 최근 중국에서 국내여행, 화장품, 야외용품, 식품 부문 매출이 증가하고 있다. 도시 봉쇄로 한동안 발이 묶였던 중국인들은 '코로나 족쇄'가 풀리자 조심스럽게 소비를 재개하는 것이다. 중국 최대 온라인 여행사 트립닷컴 집계 결과 명절인 칭밍제(淸明節) 연휴(지난 4~6일) 동안 호텔 예약은 전주 대비 60%, 항공·열차 등 교통편 예약은 50% 증가했다. 한때 하루 2000편 수준으로 내려갔던 중국 국내선 운항 편수는 코로나 이전 8000편의 절반이 넘는 4500여편까지 늘어났다.

전자상거래 사이트인 핀둬둬는 지난달 중순부터 거래가 되살아나기 시작해 매일 약 5000만건씩 물건이 팔리고 있다고 SCMP에 설명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약 60% 늘었다. 전자상거래 플랫폼 판리닷컴에 따르면 지난주 음식 재료 소비는 전주보다 24%가 증가했다.

물론 중국 내수 경기가 완연한 부활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단언하기는 무리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최근 소비 증가는 코로나로 막혔던 쇼핑과 여행 등이 연휴를 맞아 일시적으로 재개된 데 따른 것이라고 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중국인 60%는 코로나가 완전히 퇴치될 때까지 여행을 미루겠다고 답했다. 중국 소비가 코로나 이전 수준으로 되돌아갔다고 판단하기는 무리"라고 전했다. 중국 경제학자 쉬샤오녠(許小年·중국유럽국제경영대학원 교수)은 지난달 26일 "경기 호전은 연말이 되어서야 가능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