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 총선을 7일 남겨둔 시점에서 언론사들이 발표한 각종 여론조사 결과는 다수 지역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들의 우세를 점치고 있다. 서울 등 수도권 격전지에서도 대체로 민주당 후보가 미래통합당 후보를 앞서고 있다. 하지만 이런 여론조사 상당수는 표본 구성에서 무선전화 비율이 90%를 웃돌았다. 반면 유선전화(집 전화) 비율을 20~30%로 높인 일부 여론조사에선 민주당과 통합당 후보 간 격차가 확 좁혀졌다. 일부 지역에선 우열이 뒤바뀌기도 했다.

국민일보가 지난 4~5일 실시한 서울 구로을 여론조사에선 민주당 윤건영 후보 42.5%, 통합당 김용태 후보 37.5%로 5%포인트 차였다. 반면 KBS의 지난 2~4일 조사에선 두 후보 간 격차가 22.4%포인트나 됐다. 국민일보의 동작을 조사에선 통합당 나경원 후보가 44.1%, 민주당 이수진 후보 40.9%였다. 반면 문화일보의 5~6일 조사에선 이 후보(47.2%)가 나 후보(34.3%)를 12.9%포인트 앞섰다. 서울 종로, 경기 고양정에서도 조사에 따라 비슷한 현상이 벌어졌다.

이런 결과엔 유·무선 전화 비율의 차이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민일보는 이번 조사에서 유선전화 비율을 각 30% 정도 반영했다. 반면 여당 후보가 야당 후보를 큰 격차로 앞선 다른 조사는 일부를 제외하곤 표본 대부분을 휴대전화 조사로 채웠고 유선 비율은 10%에 못 미쳤다. KBS의 구로을 조사는 유선 비율이 6%, 문화일보의 동작을 조사는 9.5%였다.

통합당 여의도연구원은 전국 253개 지역구 중 경합을 벌이는 30곳 안팎에 대해 유선전화 비율을 20~30% 반영한 추적 조사를 하고 있다. 휴대전화 비율이 높은 여론조사에서 잡히지 않는 이른바 '숨은 보수표'가 적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지난해 4·3 경남 창원 성산 국회의원 보궐선거를 8일 앞두고 휴대전화 100%로 실시한 한 여론조사에선 정의당 여영국 후보가 통합당 강기윤 후보를 24.1%포인트 앞섰지만 실제 선거에선 득표율 0.54%포인트(504표) 차로 신승했다. 휴대전화만으로 조사한 것이 부정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집 전화 비율이 높아지면 휴대전화 조사에 잘 응하지 않는 보수 성향 유권자 표심이 더 반영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물론 "무선전화가 보편화한 상황에서 집 전화 비율을 높이는 것은 조사 결과를 왜곡할 수 있다"는 반론도 있다. 이번 총선부터는 휴대전화 가입자의 실거주지를 반영한 '안심 번호' 이용 조사가 가능해졌기 때문에 과거와 비교하면 정확성을 기대할 만하다는 주장도 있다.

여론조사에서 유·무선 비율을 어느 정도로 해야 한다는 확립된 기준은 없다. 3~4년 전까지만 해도 유선 비율이 30 ~40%에 달하는 여론조사가 적잖았다. 지금은 상당수 업체가 무선전화 비율을 90% 이상 반영하고 있다. 통신 환경 변화로 20~40대는 유선전화를 거의 쓰지 않고, 조사가 이뤄지는 시간에 집에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 2월 시점 전국에 설치된 유선전화는 1340만여대다. 이 중 집 전화는 1000만대가량으로 추정된다. 전체 가구(2050만)의 절반 정도에 해당한다. 표본을 구성할 때 집 전화의 가치를 무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2016년 발간된 한국조사연구학회 보고서에선 "가입자 수 측면에선 무선전화 방식이 나은 것으로 평가받지만, 응답자의 조사에 임하는 환경 측면에선 유선전화 방식이 우수하다"고 했다. 이는 집 전화로 응답한 사람은 좀 더 솔직하게 야당 지지 의사를 밝힐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일부 전문가는 60대 이상에게 휴대전화는 아는 사람들하고만 통화하는 수단이고, 모르는 번호는 잘 안 받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설령 외부 활동 중에 여론조사 전화를 받더라도 야당 지지 의사를 선뜻 밝히기 꺼리는 경우가 있어 휴대전화 비율이 지나치게 높아지면 여당 지지 표심이 실제보다 더 반영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강현철 호서대(통계학) 교수는 "똑같은 연령대라도 집에서 전화를 받은 응답자와 밖에서 활동하다가 휴대전화로 조사에 응한 사람과는 성향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외부 활동이 활발한 사람들은 진보 성향일 개연성이 있고, 주로 집에 머무는 주부 등은 '숨은 보수' 성향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