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가 부채가 사상 처음으로 1700조원을 돌파하고, 재정수지도 사상 최대 적자를 냈다. 별다른 경제 위기가 없던 지난해 방만한 재정 운용 탓에 재정 건전성에 '빨간불'이 켜졌는데, 올해는 신종 코로나 사태라는 '진짜 위기'를 맞아 적자와 빚이 훨씬 더 많이 불어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여당과 야당이 총선 승리를 위해 코로나 재난지원금까지 내걸어 나라 곳간은 더욱 축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7일 정부가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2019회계연도 국가결산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정부의 실제 살림살이를 나타내는 관리재정수지는 전년보다 44조원 증가한 54조4000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종전 사상 최대인 2009년의 43조2000억원 적자를 넘어섰다. 관리재정수지에 국민연금, 사학연금 등 사회보장성 기금 수지를 합친 통합재정수지도 12조원 적자를 냈다. 사회보장성 기금 가운데 국민연금이 매년 40조원가량 흑자를 내기 때문에 통합재정수지는 좀처럼 적자가 나지 않는데, 작년엔 관리재정수지 적자가 워낙 큰 탓에 통합재정수지까지 적자가 났다.

당신이 갚아야 할 나랏빚 이만큼… 알고 계셨습니까 - 지난해 경제 위기 상황이 아니었는데도 나라 살림이 사상 최대의 적자를 기록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를 합친 국가채무는 728조8000억원으로, 1년 사이에 48조3000억원이나 늘었다. 국민 1인당 갚아야 할 나랏빚이 1400만원 선으로 불어난 것이다. 1인당 국가채무만큼 1만원짜리 지폐 1400장을 쌓았더니 두 손으로 잡기 버거울 정도로 많았다.

재정 적자가 늘면서 국가 채무도 동반 급증했다. 중앙정부 채무(699조원)와 지방정부 채무(29조8000억원)를 합친 국가 채무는 728조8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48조3000억원 늘었다. 인구수로 나누면 국민 1인당 갚아야 할 돈이 1409만원꼴이다. 여기에 장차 공무원과 군인 연금으로 나갈 돈까지 합친 국가 부채는 1743조6000억원에 이르러 우리나라 경제 규모(1914조원)에 가까워졌다.

이런 와중에 정치권이 선거를 앞두고 막판 선심성 경쟁을 펼치면서 지금까지 힘들게 쌓아온 '재정 건전성 강국'이라는 공든 탑이 사방에서 공격받고 있다. 정부가 9조1000억원을 들여 전체 가구 70%에 긴급재난지원금을 주겠다고 하자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는 "1인당 50만원씩 주자"고 맞받으며 25조원 규모로 판을 키웠다. 이에 질세라 여당인 민주당도 "모든 가구에 최대 100만원씩 지원금을 줘야 한다"며 13조원을 쓰겠다고 나섰다.

◇올해 재정 적자 비율 위험선 넘어

진짜 문제는 올해부터다. 총선을 염두에 두고 정부가 초대형 적자 예산을 짜놓은 데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라는 돌발 변수까지 터지면서 올해 나라 살림은 역대급 빚잔치가 예고돼 있다. 이미 1차 추경만으로도 정부는 올해 관리재정수지 적자가 82조원,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이 -4.1%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는 유럽연합(EU)이 재정 건전성의 마지노선으로 삼는 '-3%' 선을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다. 현 정부는 출범 직후 발표한 '2017~2021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을 -2% 안팎으로 관리하겠다고 했지만, 올해는 물론 지난해도 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정세균(왼쪽 셋째) 국무총리가 7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 시작에 앞서 홍남기(맨 오른쪽) 경제부총리, 유은혜(왼쪽 둘째) 사회부총리 등 국무위원들과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이날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2019 국가결산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관리재정수지는 사상 최대인 54조4000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국가 채무 역시 현기증 나는 속도로 불어날 예정이다. 1차 추경까지만 반영된 올해 국가채무 예상액은 815조5000억원으로, 지난해 결산 대비 86조7000억원 늘어나게 돼 있다. GDP 대비 국가 채무 비율은 41.2%로 껑충 뛰어 역대 정부가 사수해왔던 40% 선이 처음 무너지게 된다.

그러나 이마저도 '최소한'의 수치일 뿐이다. 총 9조1000억원이 들어가는 긴급재난지원금용 2차 추경이나 경기 부진으로 인한 세수 결손은 아직 국가 채무 전망에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1차 추경 때 기재부는 올해 성장률 하락으로 세수가 2조5000억원 부족할 것으로 예상하고 세입경정을 추진했지만, 국회는 돈 쓰는 일이 더 급하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세수가 부족하면 결국 국채를 더 찍어 메꿔야 하는데, 올해 초 상황을 보면 세수 부족이 기재부 예상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다. 2월까지 국세 수입은 46조8000억원이 걷혀 작년 같은 기간보다 2조4000억원 줄었다. 올해 걷어야 할 세금 대비 실제 걷은 세금을 뜻하는 진도율은 2월 현재 16.1%로 최근 5년간 가장 낮다. 여기에 긴급재난지원금 증액과 경기 부진으로 인한 3차 추경 가능성 등을 감안하면 올해 국가 채무가 100조원가량 폭증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재정 건전성 무너지는데 '퍼주기 경쟁'

정부와 여당은 "우리나라의 국가 채무 비율은 아직 다른 선진국에 비해 낮다"고 주장하지만, 문제는 빚이 늘어나는 속도다. 홍기용 인천대 교수는 "우리나라가 높은 국가 신용등급을 유지한 것은 국가 채무 비율이 낮아 빚 갚을 여력이 충분하다고 평가받았기 때문"이라며 "국가 채무가 너무 빠르게 늘면 문제가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져 신용등급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실제로 국제신용평가사 피치는 지난 2월 한국에 대해 "GDP 대비 국가 채무 비율이 오는 2023년 46%까지 높아질 경우, 중기적으로 국가 신용등급에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지난해 말 "한국은 인구 고령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돼 복지 분야 등의 재정 지출 증가가 예상되므로 정책을 신중히 수립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종전까지 신용평가사나 국제기구들이 "한국은 재정 여력이 충분하다"고 평가하던 것과는 사뭇 달라진 태도다.

우리 경제의 최후 보루인 재정건전성이 위협받고 있지만, 지키려는 사람은 안 보이고 다들 더 못 써서 안달 난 형국이다. 그동안 나라의 곳간지기 역할을 해온 기재부는 청와대와 여당에 밀려 힘없는 금전 출납기관으로 전락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고, 상대적으로 재정건전성을 중시해온 보수 야당도 포퓰리즘 경쟁에 뛰어들었다. '1인당 50만원 지급'을 내세운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의 제안에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야당만 동의하면 소득에 관계없이 모두에게 지원금을 지급하자는 주장에 반대할 이유가 전혀 없다"며 "황 대표의 입장 변경을 환영한다"고 맞장구쳤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재정건전성이 급격히 악화하는데도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대상을 늘리는 등 재정을 남발하고 있다"면서 "지금이라도 재정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나중에 공무원 연금 지급에 문제가 생길 정도까지 악화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