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은 최소한의 상도덕마저 지키지 않았다” “유시민은 (서울대 프락치 사건이 있었던) 1984년 9월의 세상에 갇혀 있다” “‘어용 시민’으로 칭하는 이들은 진보언론마저 ‘어용’이 될 것을 요구했다”….

보수가 비판하는 진보의 행태가 아니다. 진보 성향 지식인 강준만(64) 전북대 교수는 7일 출간한 책 ‘쇼핑은 투표보다 중요하다’(인물과사상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등을 실명 비판하고 이른바 ‘문빠’ 지지층이 가져온 폐해를 지적하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조국 사태’ 이후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진보 진영의 위선을 강하게 질타하는 등 진보 지식인의 ‘진영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약속한 내용을 지키지 않았다. 최소한의 상도덕을 지키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강준만 교수는 문재인 대통령이 ‘정치 소비자’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문재인 대통령)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분열과 갈등의 정치’ ‘분열과 증오의 정치’를 끝장내겠다고 했지만, 그는 오히려 정반대의 방향으로 나아갔다. ‘조국 사태’가 대표적인 증거다.” 강 교수는 “여론의 뭇매를 견디지 못해 조국이 사퇴했지만, 문재인은 아무런 사과도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조국에 대한 애틋한 심정을 드러냄으로써 제2차 ‘국론 분열 전쟁’의 불씨를 던졌다”면서 “이는 문재인이 취임사에서 약속한 내용과 상반된 것이다. 어렵고 고상한 이야기할 필요 없다. 그는 최소한의 상도덕을 지키지 않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유시민 노무현 재단 이사장. 강준만 교수는 그에 대해 "서울대 프락치 사건이 일어난 1984년 9월에 갇혀있다"고 했다.

유시민 이사장에 대한 비판은 더 신랄하다. 강 교수는 유 이사장이 주창한 ‘어용 지식인론’이 “문재인 지지자들에게 하나의 절대적 좌표가 되었다”고 지적했다. 유 이사장은 2017년 5월 대통령 선거 직전 “진보 정부에 대해 ‘어용 지식인’이 되려 한다”고 주장했다. 강준만 교수는 “맹목적인 당파성을 ‘진보’의 자리에 올려놓고 ‘어용’이라는 말 안에 녹아 있어야 할 수치심을 지워버렸다”면서 “수치심을 지워버린 효과 때문이었을까? 인터넷엔 자신을 ‘어용 시민’으로 칭하는 이들이 대거 등장했으며, 이들은 진보 언론마저 ‘어용’이 될 것을 요구했다”고 비판했다.

강 교수는 “유시민은 아직도 ‘서울대학교 프락치 사건’이 일어났던 1984년 9월의 세상에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면서 “민주화가 이루어질 대로 이루어진 오늘날에도 유시민은 그 시절의 선명한 선악 이분법의 사고틀에 갇혀 있다”고 비판했다. 서울대 프락치 사건이란 전두환 정권 때인 1984년 9월 서울대 학생들이 학교 내에 있던 타 학교 학생 및 민간인 4명을 정보기관 프락치(첩자)로 오인해 감금하고 물고문·폭행 등을 가한 사건이다. 유시민 이사장은 당시 사건에 연루돼 징역형을 받았고, 이때 쓴 ‘항소이유서’가 명성을 얻었다.

강 교수는 “1980년대의 운동권을 지배했던 사고 가운데 ‘조직 보위론’이란 게 있다. 운동 조직을 적의 공격에서 보위하기 위해 내부에서 성폭력 사건이 일어났다 하더라도 조직 밖에 알려서는 안 된다는 논리”라며 “유시민은 민주화가 된 세상에서 그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조직 보위론을 다시 꺼내든 것”이라고 했다.

강준만 교수의 신간 '쇼핑은 투표보다 중요하다'.

강 교수는 소위 ‘문빠’가 진보 언론을 ‘어용 언론’으로 만들려는 행태도 강하게 비판했다. 진보 독립언론을 표방하는 ‘뉴스타파’는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 캠프 검증 보도를 했다는 이유로 2000여명 후원자가 이탈했다. 뉴스타파는 문 대통령이 윤석열 검찰총장을 임명한 직후 문재인-윤석열이 같은 편으로 보였을 때 윤 총장에 대해 비판적 보도를 했다가 3000여명 후원자가 이탈했다. 그러나 조국 사태 후 문 대통령과 윤 총장 입장이 다른 것으로 나타나자 이번에는 ‘뉴스타파’에 사과하는 댓글이 줄을 이었다.

‘문빠’는 경향신문·한겨레 등 이른바 진보 언론에도 절독하겠다고 위협하며 ‘어용 언론’이 될 것을 요구했다. 강 교수는 “정부 여당에 종속된 ‘기관 보도원’ 노릇이나 하라는 요구가 도대체 그 어떤 명분으로 정당화될 수 있단 말인가? ‘어용’을 철저히 실천하는 북한이나 중국의 언론 모델이 바람직하다는 것이었을까?”라고 비판했다.

강 교수는 책 출간 이유에 대해 “왜 우리는 일반 소비자의 갑질에 분노하면서도 약자를 상대로 한 정치적 소비자의 갑질엔 침묵하는가. 왜 우리는 민생이야말로 소비의 영역임에도 소비를 자본주의의 죄악과 연결시켜 백안시하는 위선과 오만의 수렁에 빠져 있는가”라며 “나는 이 책을 통해 그런 문제 제기를 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했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언론학자로 정치·사회·문화 비평 책을 줄곧 내고 있는 진보 성향 지식인이다. ‘성역과 금기에 도전한다’를 모토로 잡지와 책 형태를 혼합한 ‘인물과사상’ 시리즈 33권 등 저서 다수를 출간했다. 1990~2000년대엔 주로 보수언론 비판에 집중했으나 2010년대 중반 이후 ‘싸가지 없는 진보’ ‘강남 좌파’ 논쟁을 벌이며 이른바 진보의 ‘진영 정치’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