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비영리단체 알프라임은 최근 3D(3차원 입체) 프린터를 이용해서 재사용 가능한 마스크를 생산하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환자를 진료하는 의료진을 위해서다. 이 단체는 이미 가동 중인 3D 프린터 28대에 15대를 더 추가, 일주일에 재사용 가능 마스크 1000여개를 생산할 계획이다. 개발자인 로리 라슨은 "3D 프린팅 설계 기술을 마스크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용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3D 프린팅 기술이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 사태로 공급 부족에 빠진 의료용품 시장에 구원투수로 등장했다. 대규모 설비를 마련할 시간적 여유가 없는 상황에서 설계도와 재료만 바꾸면 필요한 물건을 바로 찍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를 기회로 인식한 전 세계 3D 프린팅 회사들도 앞다퉈 이 분야에 뛰어들고 있다.

◇마스크·격리 시설도 뚝딱

체코의 3D 프린팅 업체 프루사는 환자의 체액에서 의료진을 보호하는 얼굴 가리개를 만들고 있다. 개당 1달러 미만의 비용으로 하루 800여개를 제작한다. 이 제품은 지금까지 체코 보건 당국에 1만여개가 공급됐다. 이탈리아 스타트업(초기 벤처기업) 이신노바는 마스크와 인공호흡기를 연결하는 의료용 밸브를 제작해 100여개를 병원에 납품 중이다. 밸브는 8시간마다 바꿔야 하는 소모품이라 최근 공급이 달리고 있다. 미국의 폼랩은 환자의 콧물이나 가래 같은 검체(시료)를 채취하는 데 필요한 면봉을 3D 프린팅 기술로 하루 7만5000~15만개 생산하고 있다. 이 회사는 대량 생산을 위한 3D 프린터 1000대를 갖춘 것으로 알려졌다.

3D(3차원 입체) 프린팅 회사들이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으로 공급이 부족해진 의료용품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미국 비영리단체 알프라임이 만든 3D 마스크를 의료진이 쓴 모습과 벨기에 머티리얼라이즈가 만든 3D 핸즈프리 문고리, 사우디아라비아의 엔지니어가 만든 손소독제 손목 부착장치(왼쪽부터). 이탈리아 스타트업 이신노바는 3D 프린터로 8시간마다 바꿔야 하는 인공호흡기 밸브를 제작했다.

요즘 3D 프린터는 못 만드는 물건이 없다. 3D 프린터가 1980년대 중반 처음 등장했을 때는 합성수지를 층층이 쌓고 자외선을 쪼여 굳히는 것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기술 발전으로 금속과 콘크리트까지 이용할 수 있고, 작은 기계 부품부터 대형 구조물까지 온갖 물건을 찍어낸다. 중국의 윈선은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자 격리 시설을 3D 프린터로 만들어 후베이성에 납품했다. 3D 프린터 한 대가 하루에 시설 15개를 생산한다. 이 회사는 "샤워 부스와 화장실도 갖췄고, 기존의 콘크리트 구조보다 두 배 더 튼튼하다"고 설명했다.

3D 프린팅은 코로나 바이러스 전염을 막는 발명품에도 쓰인다. 벨기에의 머티리얼라이즈는 문 손잡이를 손 대신 팔뚝으로 잡아 돌릴 수 있는 '핸즈프리' 손잡이를 3D 프린팅 기술로 개발했다. 미국 IT 기업 HP도 핸즈프리 문고리를 생산, 세계 각국의 병원에 기증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3D 프린팅 엔지니어 모스 아부야사는 손 소독제 병을 손목에 걸 수 있는 제품을 만들었다. 손목 부착 장치로 병을 직접 만지지 않고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

◇빠르고 저렴하게 생산 가능

3D 프린터를 이용한 제품 생산은 생각보다 빠르고 저렴하다. 3D 마스크를 만든 알프라임은 "마스크 1개당 인쇄 시간은 3시간 이내이고, 비용은 2~3달러 수준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밸브나 다른 의료용품도 비슷하다. 중국 윈선은 "10㎡(3평) 크기의 격리 시설을 두 시간 내에 만들 수 있다"고 했다. 가격은 한 채에 4000달러(약 494만원) 정도다.

3D 프린터를 이용한 의료용품 생산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자동차 회사 폴크스바겐포드 등은 자동차 부품 개발에 사용하던 3D 프린터를 이용해 의료용 안면 마스크를 만들고 있다. 이런 간단한 제품은 가정의 보급용 3D 프린터로도 쉽게 만들 수 있다. 기업이나 개발자들이 공익적 목적으로 인터넷에 공개한 3D 프린트 설계도를 이용하면 된다. HP와 알프라임도 현재 생산 중인 제품의 디자인 파일을 무료로 공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