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코로나 사태 여파로 소득이 급감한 이들이 집이나 상가 월세(月貰·rent)를 납부하지 못하는 일이 속출하고 있다. 최근 2주 새 1000만명이 실직한 미국의 실업(失業) 대란이 국민의 주거 불안과 부동산 업계 타격으로 이어지는 연쇄적 경제 쇼크가 현실화된 것이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로 촉발된 미 부동산 버블 붕괴와 세계 경제 위기가 재연되는 수순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워싱턴포스트와 USA투데이는 2일 미 전역의 주택 세입자 4000만명과 상가 임차인 3000만명 중 상당수가 지난 1일 도래한 월세 납부일에 월세를 제대로 납부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앞서 뉴욕타임스도 뉴욕시의 세입자 540만명 중 최소 40%가 4월 월세를 못 내는 '월세 대란'을 겪을 것으로 전망했다. 집주인이나 임대인과 협의해 월세의 일부만 내거나 '1달러' 같은 상징적인 금액만 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는 3월부터 미국에서 코로나가 확산되면서 식당 등 비필수 업종 상점이 폐쇄되고 수요가 급감, 근로자들이 해고되거나 일감이 줄었기 때문이다. 미국엔 주급이나 월급을 받아 바로 그달 월세와 생활비로 충당하는 사람이 많다. 미국인은 저축을 별로 안 하기 때문에 목돈을 들여 집을 사기보다는 대부분 빌리는데, 한국 같은 전세 제도가 없고 월세뿐이다. 미 가구의 3분의 1이 월세로 산다. 코로나의 타격을 가장 크게 받은 뉴욕과 캘리포니아 등에선 살인적 월세 때문에 아파트 한 채를 여러 명이 빌려 방을 쪼개 쓰는 일도 흔하다.

연방 정부가 2조달러의 긴급재난지원금을 풀어도 월세 대란은 해결이 힘들다. 지원금은 빨라야 이달 중순부터 받을 수 있는 데다, 지원금 신청과 수령이 매우 더디다고 한다. 뉴욕 등 34개 주(州)는 지난달 말 4월 월세 대란이 예상되자 집주인과 아파트 관리회사들이 세입자를 1~3개월 정도 쫓아내지 못하게 하는 퇴거 유예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세입자들 사이에선 이 조치가 만료되는 5~7월부턴 월세를 더 올려 내야 하거나, 그러지 못하면 대규모 강제 퇴거 집행이 닥칠 수 있다는 불안이 퍼지고 있다.

그러자 소셜미디어에서 #CancelRent (월세 면제) #HousingisHumanright (주거는 인권) #NoWorkNoRent(일 못 하면 월세도 못 내) 같은 해시태그를 달고 월세 납부 거부 운동이 일고 있다. '월세 파업(Rent Strike 2020)'이란 이름의 전국 조직까지 등장했다. 주체는 대부분 비정규직 젊은이다. 이들은 4·5월 두 달 만이라도 월세와 전기료 등을 면제해달라며 "당국과 임대인들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장기간 월세 파업을 하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미 뉴욕·보스턴·LA·시카고 등에선 가두시위가 등장했고, 'Rent Strike'를 적은 흰 천을 창 밖에 내거는 이도 있다.

세입자 사정이 딱하지만 월세를 안 받으면 주인들도 어려워진다. 임대인들도 건물 대출금이나 관리비, 재산세를 매월 내야 한다. 시카고트리뷴은 2일 "오늘 임차인만 봐주면 내일은 임대인 문제로 걷잡을 수 없이 퍼질 것"이라고 했다. 월세 미납 사태가 부동산 업종의 붕괴와 대량 해고, 그리고 관련된 은행·신용카드·에너지회사 파산으로 번져 경제 악순환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