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 오전 1시 20분쯤, 서울 마포구 중동의 한 택시 회사 사무실에서 기사 이모(61)씨가 회사 간부 신모(58)씨의 몸에 시너 2통을 끼얹은 뒤 불을 붙이고 달아났다. 깜짝 놀란 주위 사람들이 황급히 양동이에 물을 담아와 신씨 몸에 뿌렸지만, 신씨는 전신에 3도 화상을 입어 위중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범행 이틀 만인 30일 오후 11시쯤 서울 마포경찰서를 찾아 자수했다. 경찰은 "방화와 살인 미수 혐의로 이씨의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31일 밝혔다. '사납금 없는 착한 택시 회사'에서 벌어진 일이다.

지난 29일 오전 1시 20분쯤 서울 마포구 한국택시협동조합 차고지에서 한 택시 기사가 소속 회사 간부의 몸에 불을 붙이고 달아나자 놀란 직원들이 건물 밖으로 나와 웅성거리고 있다. 피해자는 전신 3도 화상을 입어 위중한 상태로 알려졌다. 피의자는 범행 이틀 만에 경찰에 자수했다.

한국택시협동조합 '쿱 택시'는 2015년 2월 박계동(68) 전 한나라당 의원이 "사납금 없고 수익은 조합원들이 나눠 갖는 택시 회사"를 표방하며 만들었다. 기사가 출자금 2500만원을 내고 들어오면 월급을 보장받았고, 회사에 이익이 나면 조합원으로서 배당 수익도 약속했다.

일반적인 회사 택시는 기사들이 택시를 운행하면서 번 돈 가운데 일부를 사납금으로 내고 나머지를 자기 몫으로 가져가는 구조다. 당시 기준 오전에 영업한 기사는 하루 12만5000원을, 오후 영업 기사는 14만5000원을 사납금으로 내야 했고, "너무 과하다"는 불만이 택시 기사들 사이에선 나오던 상황이었다. 사납금이 없는 회사가 출범했다는 소식에 기사 187명이 몰렸다. 쿱 브랜드를 단 택시 75대는 첫해 평균 가동률 97%를 기록하며 순항했다.

◇내부 고소·고발 난타전, 월급 7개월 밀려

'착한 택시'는 얼마 못 가 삐걱대기 시작했다. 2017년 말부터 조합원들은 "박계동 이사장을 비롯한 운영진이 독단적인 경영을 한다"며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출범 3년 차였다. 결국 조합원 100여명이 당시 운영진에 반대하는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를 만들고 이사장 퇴임 운동을 벌였다. 이듬해 4월, 결국 박 이사장은 해임돼 쿱 택시를 떠났다. 현 이사진은 "박 전 이사장 퇴임 이후 비대위가 통장을 확인해 보니 딱 11만8000원 남아있더라"고 했다.

비대위에서 활동하던 택시 기사 경력 30년의 이일열(69) 이사장이 2018년 10월 새롭게 취임했지만 분란은 계속됐다. 이번엔 박 전 이사장 편에 있던 조합원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양측은 서로를 횡령·배임 혐의 등으로 잇달아 고소·고발했다. 조합원들 간 소송만 수십 건. 지난달 열린 임시총회에서 이일열 이사장도 해임됐다. 표 차이는 단 두 표였다. 이 이사장은 "갈등을 봉합하고 제대로 운영하고 싶었지만 조합원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기가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회사 운영이 제대로 될 리 없었다. 결국 지난 9월부터 조합원들 월급을 주지 못할 정도로 재정이 악화됐다. 조합원들은 조직을 떠나기 시작했다. 현재 조합원 수는 90여명으로 출범 당시의 반 토막이 났다. 택시 가동률도 30%대로 떨어졌다.

이번에 회사 간부 몸에 불을 지른 이씨도 "회사를 나갈 테니 내게 걸린 소송을 취하해 달라"고 요구했다가 거절당하자 범행을 저질렀다. 이씨는 조합 창립 멤버였고, 현 이사진과는 갈등 관계였다고 한다. 한 조합원은 "이사진이 이씨 요구에 오히려 '출자금 2500만원 외에 추가로 200만원 가까운 돈을 내놓고 나가라'고 하면서 일이 터진 것"이라고 했다.

◇"모두가 주인인 줄 알았는데…"

"5년 전으로 되돌린다면 택시협동조합에 참여하겠느냐"는 질문에 조합원들은 하나같이 "안 한다"고 답했다. 이들은 '모두가 주인'이라는 협동조합의 이상과 달리 한계를 절감했다고 입을 모았다. 조합원 백모씨는 "이사장부터 이사, 감사, 재무 담당까지 경영진이 모두 조합 소속 택시 기사로만 이뤄졌는데, 회사 경영에 대해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며 "택시를 몰며 회사 경영을 맡는다는 게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조합원은 협동조합 자체의 한계를 지적했다. 한 조합원(58)은 "조합원 한 명에게 한 표를 주는 협동조합의 운영 방식이 민주적 운영이라는 장점으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조합원 모두를 사내 정치에 빠뜨리는 한계점도 분명히 존재한다"며 "당장 맡은 업무보다는 내 편, 네 편 편 가르기와 사내 정치에 휘말리게 되면서 결국 택시 운영은 뒷전이 된다. 당장 소송이 걸려 있는데 운전대 잡고 나가게 생겼느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