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시 미디어 공유.'

30일 오후 7시쯤 'Alice in wonderland'(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는 제목의 텔레그램 방(이하 '앨리스방')에 이런 공지가 떴다. 공지는 '잠시 뒤 새벽 3시에 성(性) 착취물을 공유하겠다'는 뜻이다.

이튿날 오전 2시, 앨리스방에 기습적으로 인터넷 주소 링크가 떴다. 공지된 시각보다 1시간 이른 시각이었다. 링크를 클릭하자 20여명이 이미 방에 접속해있었다. 방장을 비롯한 참여자들이 각자 보유한 음란물 파일을 올리기 시작했다. 파일을 올리면 표시되는 썸네일(견본 이미지)만 보고도 이들은 "박사(조주빈)도 구하려고 쩔쩔맸던 것" "갓갓(n번방 창시자)이 만든 권○○ 영상이네" 등 촌평을 했다.

음란물을 단순히 내려받기만 하면 이 방에 남아있을 수 없다. 방장은 파일을 올리지 않은 닉네임을 하나씩 거론하며 독촉했다. 한 참여자가 "뉴비(초보자)라 올릴 야동이 없다"고 하자, 방장은 "폰허브(유명 음란물 사이트 이름)에서 다운받아서라도 올리라"고 했다. 대꾸가 없는 닉네임을 찾아내 쫓아내기 시작하자 "기다려달라" "시간을 달라"며 애원하는 참여자도 나왔다. 방이 개설된 지 불과 30분 만에 1000여개의 음란물이 채팅창에 쏟아졌다. 기자는 오전 2시 40분쯤 '아무런 파일도 올리지 않은 죄'로 방에서 쫓겨났다.

경찰이 박사방 참여 닉네임 1만5000건 전체를 조사하겠다고 발표했지만, 그들은 위축된 기색이 없었다. 텔레그램에서는 제2의 조주빈들이 여전히 활개를 쳤고, 성 착취물을 구하려는 그들의 수많은 추종자가 꾸준히 접속해왔다.

음란물 공유는 텔레그램에서도 규정 위반이다. 텔레그램 운영진은 적발한 채팅방을 즉시 폐쇄하고, 그 방에 있던 자료도 볼 수 없게 만든다.

성 착취물 공유자들은 이런 단속을 피하기 위해 채팅방을 3단계로 나눠 운영하고 있었다. 1단계 '공지방'엔 수시로 새 링크가 올라온다. 이 링크를 타고 입장한 2단계 '대화방'에선 참여자끼리 음란물, 마약, 경찰 수사 동향 등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방장이 3단계 '음란물 유포방'의 링크를 띄울 시각을 예고한다. 그러면서도 실제 링크를 띄우는 시각은 예고 시각과 오차를 둔다. 2~3단계 방은 때로는 '단속'에 걸려서, 때로는 자발적으로 수시로 생성과 해체, 재생성을 반복한다. 하지만 '뿌리'에 해당하는 1단계 공지방은 존속하는 것이다.

일부 음란물 공유방에선 이른바 '문상'이라 불리는 문화상품권을 통한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문화상품권의 고유 번호인 핀(PIN·개인확인번호) 번호를 판매자에게 알려주면, 그가 텔레그램으로 영상을 보내는 식이다.

문화상품권은 핀번호만 알면 상품권 실물이 없어도 사용이 가능하다. '10만원권 문화상품권 핀 번호를 알고 있다'는 말은 '10만원짜리 문화상품권을 가지고 있다'는 말과 같은 의미다. 핀 번호만 넘기면 거래 당사자가 직접 만날 필요도 없고, 송금 기록도 남지 않는다. 이렇게 모은 문화상품권은 상품권 구매 업체를 통해 일부 수수료를 제하고 현금화한다고 한다.

판매자들은 "문화상품권을 이용한 거래는 추적되지 않는다"고 믿고 있었다. '여중생 성행위 영상 23개를 4만원에 판다'고 공지한 판매자는 구매자인 척 접근한 기자에게 "이번 달에도 십여 차례 거래했는데 아무 문제 없었다"고 했다. 동영상 유출 피해자가 다니는 학교까지 밝히며 구매를 유도하던 다른 판매자도 "단속이 불안하면 문화상품권 거래를 하라"고 권했다.

하지만 경찰은 "문화상품권 발행기관과 공조를 통해 거래 내역을 추적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경찰은 'n번방'에서 이 같은 방식으로 거래한 참여자들에 대한 수사에 이미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앨리스방에서 이어진 성 착취물 공유방이 사라지고 날이 밝았다. 앨리스방에선 "기자가 들어와 있는 것 같다" "(방을) 물갈이해야겠다"는 글이 올라왔다. 기자는 모든 텔레그램 방을 나와 경찰 사이버수사대에 신고를 접수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