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홍 컬처엔지니어

# 이른바 ‘긴급재난지원금’이 문제다. 우선 그 졸속함이 지난번 마스크 사태를 빼닮았다. 이미 ‘소득 하위 70%’의 기준선을 둘러싸고 한바탕 소란이 일고 있다. ‘소득 하위 70%’? 듣도 보도 못한 ‘듣보잡’ 기준선이다. 대개 정부가 복지 지원에 쓰는 기준은 이른바 ‘중위 소득’이다. ‘중위 소득 100%’라고 하면 전 국민을 일렬로 세웠을 때 한가운데 있는 소득군이다. 이를 바탕으로 추론하니 얼추 소득 하위 70%가 이른바 중위 소득 150%와 겹친다는 이야기가 나돌아 1인 가구 263만원, 4인 가구 712만원 등이 기준인 것처럼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었다. 그러자 다시 사람들은 이것이 세전이냐 세후냐, 근로소득만이냐 여타 소득 인정액을 포함한 것이냐를 놓고 애먼 논란을 거듭했다. 결국 사람들은 정부가 운영하는 복지 포털 사이트 ‘복지로( www.bokjiro.go.kr )’에 들어가 현재 운용하는 모의 계산 방식을 활용해 계산해보려 했지만 하도 많은 이가 접속하는 바람에 그마저도 곧장 다운되고 말았다. 설사 접속되었다 해도 지급 기준 수치를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아직 정해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주무 부처인 복지부에 그 기준을 마련하라고 지시가 떨어진 것도 발표가 있던 바로 그날이었으니 우왕좌왕하기는 주무 부처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 결국 이제까지 한 번도 획정하지 않았던 '소득 하위 70%'의 기준선을 정하는 것만으로도 온 국민을 대혼란에 빠뜨리고, 가뜩이나 코로나 때문에 정신없는 이 와중에 애꿎은 행정 비용과 시간이 적잖이 소요될 것이 뻔하다. 그 획정 과정은 물론 실제 적용에서 상대적 박탈감에 따른 사회적 갈등마저 야기할 소지도 다분하다. 한마디로 마스크 사태 때처럼 별것 아닌 것 같은데 결국엔 평지풍파가 일 것이다. 돈 준다는데 마다할 이도 없겠지만 정작 한 끗 차이로 받고 못 받고가 결정 나는 상황이라면 그 경계선에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반발할지 누구도 쉽게 가늠하기 어렵다. 그래서 이재명 경기지사 같은 이가 "줄 것이면 다 줘야 한다"고 말한 것인지 모른다. 사실 굳이 풀 것이면 그렇게 하는 것이 백번 맞는다.

# 하지만 진짜 문제는 '긴급재난지원금'이 내포한 정치적 꼼수다. 실제로 긴급재난지원금이란 명목으로 살포하는 쿠폰이 경제의 막힌 혈관을 뚫는 절묘한 침 한 방이 되길 기대한다면 턱도 없는 얘기다. 이미 지난달 17일 국회를 통과한 11조7000억원 규모의 1차 추경에서 1조를 동원해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에 대해 각각 4인 가구당 140만원과 108만원씩 소비 쿠폰을 지급하기로 결정하고 이를 4월 중에 완료하겠다고 기획재정부가 밝힌 바 있다. 여기에 7세 미만 자녀를 두 명 둔 경우에는 월 10만원씩의 기존 아동수당 말고도 4개월간 40만원씩 특별 돌봄 쿠폰이 더해져 80만원 상당을 더 받는다. 다시 여기에 긴급재난지원금까지 더해지면 차상위계층과 기초수급자층은 코로나 사태로 1, 2차에 걸쳐 총 290만~320만원 상당을 지원받는 셈이 된다. 이쯤 되면 수혜자들조차 정작 그 많은 쿠폰(돈이 아니다!)을 어디에 어떻게 써서 소화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애초에 '실제 사용처가 없는 상태에서 돈을 푸는 엇박자 정책이 될 가능성'을 언급했던 이는 홍남기 경제부총리 자신이었다. 결국 시장이 정상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갈 곳 모르는 쿠폰은 속칭 '깡(할인)'을 해서 얼마를 떼고 현금화될 개연성이 매우 크다. 이때 지원금은 고스란히 장롱에 갇히고, '깡'을 해서 확보된 쿠폰은 이리저리 돌아 지하 자금화할 개연성이 작지 않다. 그렇게 만들어진 자금은 어김없이 대선 등 큰 선거 때 고개를 쳐들고 세상 밖으로 나온다. 대선 같은 경우, 국가보조금만으로 선거를 치를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 512조원짜리 울트라 수퍼 예산을 짤 때부터 이미 올해 총선을 앞두고 선심성 공약 예산을 남발한 터였다. 여기에 지난달 중순에 1차 코로나 추경 11조7000억원이 적다며 18조 이상으로 늘리지 않으면 여당이 경제부총리를 경질할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지 않았던가. 당시 이미 적자 국채를 찍어 추경을 세운 탓에 나랏빚이 815조 고지를 넘어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 채무 비율이 마의 40%를 돌파해 이미 41.2%를 찍고 있을 때였다. 이런 지경에 적자 국채 더 찍어 추경 늘리라는 얘기는 나라가 망하든 말든 상관없고 오직 총선 때 돈 풀 생각만 있었다는 것 아닌가. 이번 긴급재난지원금 명목의 2차 추경 규모가 7조1000억원이다. 결국 보름 전 18조 이상 규모로 추경을 늘리지 않으면 경제부총리도 날릴 수 있다던 여당 대표의 으름장이 먹힌 셈이다. 그래서 지급 대상의 세부 기준도 정하지 못한 채 날콩 구워 먹듯 당·정·청이 모여 소득 하위 70% 긴급재난지원금 '살포'를 결정해 버린 것이다. 그리고 국무회의도 통과하지 않은 상태에서 대통령이 직접 나서 마이크를 잡고 총선 직후 이를 집행하겠다고 정치 광고성 발언을 먼저 한 것이다. 2차 추경이 국회를 통과할지 못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말이다.

# 결국 소득 하위 70%에 대한 긴급재난지원금 명목의 지원 결정 발언은 코로나 사태를 빙자해 전 국민을 상대로 아니, 자신들에게 표 주지 않을 것 같은 상위 30%를 제외한 나머지 국민에게 공개적으로 선거 직후 금품 살포 의지를 공약한 것과 다름없다. 나라가 망하든 말든 선거에서 이겨야 대통령의 탄핵을 막고 조국을 복권시킬 수 있다는 절박함이 졸속 입안된 긴급재난지원금 밑동아리에 배어 있는 것이다. 코로나 박멸과 더불어 이 어처구니없는 정권의 위험한 줄타기를 끝장내려면 이번 총선에서 ‘분노의 압승’ 이외에 다른 길이 없지 않겠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