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노동기구(ILO) 통계에 따르면 라틴아메리카에선 전 세계 가정부 40%에 달하는 1800만여 명이 가정부로 일한다. '소녀'를 가리키는 스페인어 '무차차'가 일부 지역에선 '가정부'를 뜻할 만큼 가정부 고용은 보편적이다. 부잣집은 아예 청소·현관 관리·요리 등 기능별로 가정부를 십수명씩 두기도 하고, 중산층 가정은 가정부 한 명을 가사 학원에 보내 여러 일을 배우게도 한다.
바로 이 라틴아메리카 '가정부 문화'가 코로나 확산의 기폭제가 될 수 있다고 외신들은 지적한다. 일부 중산층까지 널리 가정부를 두는 문화가 취약 계층으로의 감염 통로가 된다는 것이다. 해외에 다녀온 집주인이 들여온 코로나를 가정부가 가족·이웃에게 옮기는 식이다. 브라질 상파울루 최대 공립 병원 호스피탈 다스 클리니카스의 베아트리스 페론지 박사는 "취약 계층 가정 대부분이 한 방에서 거주해 거대한 전염을 촉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라틴아메리카 최다 코로나 확진국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주(州)에서는 첫 코로나 사망자가 60대 가정부였다. 지난 달 이탈리아로 휴가를 다녀온 집주인에게 병을 옮아 지난 17일 한달 만에 숨졌다. 이들이 주로 거주하는 브라질 빈민촌 '파벨라'에선 최근 코로나 확진자가 속출한다고 영국 BBC는 전했다. 멕시코·도미니카 공화국 등에서도 가정부들이 집주인으로 인한 코로나 감염 불안을 호소한다고 워싱턴포스트(WP)는 전했다.

브라질 상파울루의 파카엠부 축구경기장에 지난달 30일(현지 시각)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환자 치료를 위한 야외병동이 건설되고 있다.

각국 정부는 가정부에게 유급휴가를 주도록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상당수 가정이 여전히 가정부를 쓴다. 브라질 노동당국은 "사회적 격리 시기에서조차 가정부를 찾는다"고 하소연했다. 멕시코 유명 작가 과달루페 로아에사는 "가정부를 유급휴가 보내면 부자들은 굳이 아침을 먹으려고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않을 것이다"고 꼬집었다.
가정부를 계속 쓰는 이유는 왜일까. 값싼 임금이 원인으로 꼽힌다. 가정부는 평균 300~500달러 이하의 매우 낮은 월급을 받아 고용에 부담이 적다.
역사적 맥락도 있다. 16~19세기 스페인·포르투갈 등 유럽의 식민 지배가 이어지며 백인·백인계 혼혈이 사회·경제적 주류가 됐고, 원주민·흑인 혈통은 빈곤을 대물림하고 있다. 라틴아메리카 전문가들에 따르면 여전히 가정부 자리는 이들에게 귀한 일자리이며 세습되기도 한다.
브라질 산타 마리아 연방대 주레마 브리치스 사회학 교수는 "라틴아메리카의 식민주의·노예제 역사에 뿌리내린 가사 노동이 완전히 토착화됐다"며 "부자에게 가사 노동은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일이 됐다"고 말했다.
최근 브라질 정부는 가정부에게 한달 200헤알(약 4만7000원)을 지급한다는 긴급 조치를 내놨다. 그러나 "근무를 그만두기에는 임대료, 공과금은 차치하고 한 가족 식비를 대기도 충분치 않다"고 BBC는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