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바이러스의 창궐로 지구촌은 지금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를 열독 중이다. 1957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카뮈가 1947년 발표한 소설 ‘페스트’가 재조명되고 있다. 프랑스에서 ‘페스트’를 독점 출간해 온 갈리마르 출판사는 3월 이후 5000부를 더 찍었다. 이탈리아에선 카뮈의 ‘페스트’가 베스트셀러 3위까지 뛰어올랐다. 국내 ‘페스트’ 판매도 급증했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한국어판 ‘페스트’는 약 30종이고, 전부 합쳐서 지난 두 달간 약 1만8000부 팔렸다. 민음사에서 낸 ‘페스트’(김화영 옮김)가 7000부가량 팔리면서 선두를 차지했다.

프랑스 언론에선 '감염병 소설' 전문가로 꼽히는 오렐리 팔뤼 교수(렌 대학)가 주목받고 있다. '페스트'는 1940년대 도시 '오랑'이 감염병으로 외부와 단절된 가운데, 주민 공동체가 질병에 맞서 보여주는 다양한 반응을 그려낸 소설이다. 팔뤼 교수는 "감염병은 정치적, 도덕적 성찰의 호재가 된다"고 풀이했다. "내가 연구한 동시대 작가들의 경우, 유난히 되풀이되는 것은 공동체에 관한 질문이다. 하나의 공동체가 오늘날 여전히 가능한가? 개인은 자족적으로 사는가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들 틈에서 사는가? 이런 질문들이 감염병을 통해 묵직하게 제기된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로 번지는 가운데 전염병 창궐을 소재로 한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가 재조명되고 있다. ①한국어판(민음사) ②일본어판 ③이탈리아어판 ④프랑스어판 ⑤한국어판(열린책들) ⑥영어판 ⑦독일어판 ‘페스트’의 표지와 ⑧작가 알베르 카뮈(1913~1960).

팔뤼 교수는 이를 위해 카뮈의 묘사를 즐겨 인용했다. '그는 역사상 알려진 약 서른 차례에 걸친 대규모 페스트가 일억에 가까운 인명을 빼앗아 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억의 사망자가 과연 무엇인지 알 듯 말 듯해져 버리는 것이다. (중략) 사망자 일만 명이라면 커다란 영화관을 가득 채운 관중의 다섯 곱이다. 똑똑히 이해를 해 보자면 극장 다섯 군데에서 구경을 마치고 나오는 사람들을 한데 모아서, 그들을 시내의 큰 광장으로 데리고 간 다음 모두 죽여서 무더기로 쌓아놓는다는 식으로 상상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팔뤼 교수는 '페스트' 중 감염병과 전쟁을 비교한 대목도 손꼽았다. '이 세상에는 전쟁만큼이나 많은 페스트가 있어 왔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생겼을 때 사람들은 언제나 속수무책이었다. (중략) 전쟁이 일어나면 사람들은 말한다. "오래가지는 않겠지. 너무나 어리석은 짓이야." 그렇다고 해서 전쟁이 오래가지 않는다는 법도 없다. 어리석음은 언제나 악착같음이다.'

팔뤼 교수는 감염병 사태를 맞을 때마다 되풀이되는 인간의 어리석음으로 인종차별을 꼽았다. 코로나 사태의 발원이 중국이기 때문에 유럽에서 일어나는 아시아인 박해를 우려하면서 "흑사병이 중세에 유대인을 속죄양 삼았듯이, 오늘날의 감염병이 잘못된 타자의 표상을 새로 만들거나 되풀이하면서 케케묵은 공포를 솟구치게 한다"고 했다. 그녀는 카뮈가 페스트 퇴치 상황으로 소설을 마무리하면서 제시한 교훈을 강조했다. "구습에 다시 빠지는 것은 너무 위험하고, 그런 관습은 악의 프로파간다에 유리하다. 우리는 늘 경계해야 하고, 새로운 연대감과 우선권(優先權)에 기초한 사회를 건설하려고 해야 한다."

작가 알랭 드 보통은 지난 3월 뉴욕타임스 칼럼을 통해 소설 ‘페스트’의 의미를 냉소적으로 해석하면서 인류에게 날린 카뮈의 경고를 되살렸다. 그는 “인간은 언제라도 바이러스 혹은 어떤 사건이나 우리와 똑같은 사람의 행동에 의해 무작위로 몰살당할 위험에 노출돼 있다”면서 소설의 한 대목을 인용했다. ‘사람은 제각기 자신 속에 페스트를 지니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그 누구도 그 피해를 당하지 않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 뒤를 더 읽어보면 이렇다. ‘늘 스스로를 살펴야지 자칫 방심하다가는 남의 얼굴에 입김을 뿜어서 병독을 옮겨 주고 맙니다. (중략) 건강, 청렴, 순결성 등은 결코 멈춰서는 안 될 의지의 소산입니다. 정직한 사람, 즉 거의 누구에게도 병독을 감염시키지 않는 사람이란 될 수 있는 대로 마음이 해이해지지 않는 사람을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