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0만 가구에 최대 100만원씩 주는 정부의 코로나 피해 지원책에 모두 9조원의 예산이 든다. 중앙정부 부담인 7조여원은 총선 직후 2차 추경을 편성해 조달하겠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7조원 중 일부를 기존 예산을 조정해서 조달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상당 부분은 또 빚(적자 국채)을 낼 전망이다. 경제부총리도 "적자 국채 발행이 불가피할 수 있다"고 했다.

당초 기획재정부가 추진했던 것은 1000만 가구에 최대 100만원씩 주는 방안이었다. 미국 일본처럼 저소득 계층을 선별 지원한다는 원칙이었다. 하지만 당정 협의에서 민주당이 지원 대상의 대폭 확대를 요구했다. 소득 하위 70%의 명확한 기준도 없이 졸속으로 발표하는 바람에 정부 홈페이지는 접속자가 몰려 하루종일 먹통이었다. 국민 전체 소득 통계가 없어 이제부터 만들겠다고 한다. 실제 지급은 빨라야 5월로 예상되는데 덜컥 발표한 것은 총선용이라는 것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정부는 이 지원금과 별개로 각 지자체가 중구난방 추진 중인 현금 뿌리기도 중복 허용하겠다고 했다. 예컨대 경기도 내 11개 시·군은 최대 세 종류의 지원금을 받게 된다고 한다. 이 11개 시·군은 1곳 빼고 모두 재정 자립도가 50%를 밑돈다. 결국 국민 세금으로 일부 지역만 중복 지원받는 것이다. 정부가 원칙을 세워 지자체들의 경쟁적인 현금 뿌리기를 정리해야 한다. 야당이 손 놓고 있을 리 없다. 한 술 더 떠 적자 국채를 40조원 찍자고 주장했다. 여야의 현금 매표 경쟁이 벌어진 것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첫해 20조원이던 적자 국채 발행액이 올 한 해 본예산에서만 60조원으로 늘었고, 1·2차 추경까지 합치면 80조원에 육박할 전망이다. 여야의 경쟁적 현금 뿌리기가 계속되면 이 눈사태 같은 재정 적자가 앞으로 코로나보다 더 심각하게 국민과 국가 경제를 위협할 것이다. 코로나 사태를 맞아 정부가 피해 저소득층을 지원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미국처럼 달러를 마음대로 찍어내는 기축통화 국가가 아니다. 국가 재정을 살얼음 위를 걷듯이 운영해야 하는 나라다.

저소득층도 지원하고 재정도 지키는 방법이 없는 것이 아니다. 올해 예산은 무려 512조원이다. 수퍼 예산이라 불렸던 작년보다도 42조원(9.1%)이나 늘어 초(超)수퍼 예산으로 불린다. 이 역시 선거용 예산이었다. 당연히 불요불급한 지출이 많이 포함돼 있다. 코로나 사태로 당장 집행이 곤란해진 사업들도 적지 않다. 이런 지출만 삭감해도 상당한 규모의 재원 확보가 가능하다. 512조원 예산의 10%만 조정해도 50조원을 준비할 수 있다. 50조원이면 코로나 사태가 최악으로 장기화된다 하더라도 상당 부분 대비할 수 있다. 적자 국채를 찍는 것은 미래 세대의 돈을 빼앗아 지금 당장 나눠 먹는다는 뜻이다. 달리 대안이 없고 불가피하다면 그렇게 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다른 길이 있다면 그 길로 가야 한다. 기존 예산의 재조정을 통해 코로나 대응에 필요한 재정을 확보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