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한 제약사의 영업사원 김모씨는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사태 이후 재택근무 중이다. 확진자가 급증했던 지난달 말부터 한 달 가까이 대면(對面) 영업 활동을 못 하고 있다. 평소 같으면 하루 거래처(병원) 10~12곳을 돌아야 한다. 김씨는 "병원에서 영업사원 방문을 꺼리는 경우가 많았다"며 "새로운 거래처를 확보하려면 직접 보고 안면을 터야 하는데 전화로만 영업하다 보니 어려움이 크다"라고 말했다. 제품 홍보를 위해 진행하던 심포지엄도 대부분 취소됐다. 김씨는 "온라인 심포지엄을 하지만 관심도와 참여도가 낮다"며 "언제까지 이런 상황이 지속될지 답답하다"고 말했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일부 치료제·백신 개발사와 진단키트 업체 주가가 급등했지만 대부분 제약·바이오사는 울상이다. 병원은 감염 우려로 영업사원 방문을 막고, 국내외 학회는 줄줄이 취소되고 있다. 또 임상 시험 대상자 구하기가 어렵게 됐고, 증시 불안으로 예정됐던 기업공개(IPO) 일정도 연기하고 있다.

◇"할 사람이 없어요" 임상 중단

제약사들은 코로나 사태로 신약 개발 임상 시험 대상자 모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내 대형 제약 A사는 희소 질환 치료제 임상 시험이 난관이다. 환자가 희소 질환 외에 다른 기저 질환이 있는지 검진을 받아야 하는데, 코로나로 검진실을 운영하지 않는 병원이 많다. 이 때문에 임상 시험에 적합한 사람인지 판단조차 못 하고 있다. 위염 같은 가벼운 질병의 경우에는 "코로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병원에 가서 임상할 수 없다"라며 임상 지원 의사를 철회하는 사례가 속출한다. B 제약사 임원은 "새로운 임상 대상자 모집도 어렵고, 기존 임상 대상자도 병원 방문을 꺼려 난감한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해외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대웅제약도 지난해 말 중국에서 보툴리눔 톡신에 대해 임상 3상에 들어갔지만, 환자 모집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국적 제약사 일라이릴리는 지난 23일 "새로운 연구는 대부분 연기하고, 진행 중인 연구의 환자 모집은 일시 중지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제품 판로도 막혔다. 제약·바이오업계에서는 영업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코로나로 병·의원과 약국 등 의료기관이 영업사원 출입을 막고 있다. 종근당, 유한양행, 녹십자 등 대형 제약사는 전 영업사원이 재택근무가 원칙이다. 한 제약사 관계자는 "병원과 약국을 오가는 영업사원이 자칫 '수퍼 전파자'가 될 위험이 있어 더 조심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자금 조달 길 막혀

제약·바이오사들은 국내외 학회에 참석해 임상 결과와 논문을 발표하고 이를 통해 개발 중인 후보 물질을 기술 수출하거나 투자를 유치한다. 하지만 학회가 잇따라 연기되거나 취소되면서 자금 조달 길도 막혔다. 미국심장학회(ACC)와 유럽부정맥협회(EHRA) 등 미국·유럽에서 열릴 예정이던 약 50개 국제학술대회가 취소되고 대신 온라인으로 진행된다. 또 매년 2만명이 모이는 세계 최대 규모의 미국암학회(AACR)는 4월 개최 예정이었지만 연기됐다. 주최 측은 8월 개최를 검토 중이다. 국내에서 열릴 예정인 학회도 대부분 연기되거나 취소됐다.

주식시장 불안이 계속되자 기업공개(IPO)를 통한 자금 조달도 차질을 빚고 있다. 제약·바이오 회사는 적정한 기업 가치를 평가받지 못할 것으로 생각해 기업공개 일정을 미루고 있다. 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기업설명회(IR) 열기도 어렵다. SCM생명과학은 IPO 철회신고서를 제출하고 상장 계획을 연기했다. 코넥스에서 코스닥으로 이전 상장을 추진해오던 신약 개발 회사 노브메타파마와 체외진단기 전문 기업 티씨엠생명과학도 상장 계획을 미뤘다. SK바이오팜도 올해 상반기 유가증권시장 상장을 목표로 하지만 상황이 나빠지자 아직 증권신고서도 제출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