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다움의 사회학 필 바커 지음|장영재 옮김 소소의책|336쪽|1만7000원

텔레그램 '박사방'은 보통의 성적(性的) 기호를 가진 남자가 이해하기 힘든 세계다. 차마 입에 담기 힘든 성 착취가 벌어지는 데다, 목불인견에 가까울수록 입장료가 비싸다. 박사방을 포함해 이른바 'n번방'들은 포르노의 종착지가 어딘지 분명하게 가리킨다. 그곳은 여성을 완력으로 지배하려는 병적인 남성성이 거리낌 없이 배설되는 공간이다. 호주 출신 언론인 필 바커는 이 책에서 여성을 억압하고 착취해 온 사례를 열거하고, 병적인 남성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남자다움의 혁명'을 이뤄야 한다고 말한다. 해마다 포르노 1만3000편이 제작되고 업자들은 150억달러 수익을 창출한다. 연간 약 600편이 제작돼 100억달러를 벌어들이는 할리우드 영화 산업을 압도하는 수치다. 그런데 포르노 사이트에서 가장 많이 검색되는 단어는 'teen(10대)'이고, 약 40%는 여성에 대한 폭력을 담고 있다. 성적 학대를 다루는 사이트 연간 접속 건수는 6000만건에 이르며, '10대'와 '학대'를 결합한 '학대받는 18세(18&Abused)'는 포르노 최고의 인기 테마로 자리 잡았다. 포르노 상당수가 성의 기쁨을 그리기보다 여성을, 그것도 어린 여성을 잔인하게 학대하는 내용을 담는 이면에는 남자들의 지배욕이 도사리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여성 혐오는 그 지배욕의 이면 거울이다. 경제 운용 토대가 남성의 노동력에서 남녀 간 차이가 없는 지식과 정보로 옮겨감에 따라 남자들은 그전에 독차지했던 일자리를 두고 여성과 경쟁하게 됐다. 경쟁에서 진 남자는 보상 심리로 여성을 향한 폭력에 집착한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실제로 2014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선 사회에서 밀려나고 여성의 관심에서도 멀어진 남자가 총기를 난사해 여성 수십 명이 죽거나 다쳤다.

어린 소녀 앞에서 화내는 남성. 완력으로 약자를 굴복시키려 하기보다 소통하고 공감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저자는 조언한다.

폭력의 희생자는 어머니와 여동생, 아내와 딸이다. 호주에선 매주 한 명꼴로 여성이 배우자나 이전 배우자에게 살해당한다. 살해된 여성 4분의 1이 가정폭력 보호 대상자였지만 비극이 벌어지는 현장에 국가는 없었다. 여성은 길을 걸을 때조차 불안감의 포로다. 2018년 조사에선 18~24세 호주 여성 10명 중 8명이 길거리에서 괴롭힘을 당했다.

전통적인 남자다움은 남성 자신도 불행에 빠뜨린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 부작용 중 하나가 신체 접촉을 통한 표현을 어색해하는 태도다. 남자는 대화할 때 눈을 맞추지 않고, 위로를 주고받을 때 서로 포옹하지 않는다. 그게 남자다움이라고 배웠다. 그 결과, 정서·신체적으로 고립감에 빠져도 탈출이 쉽지 않다. 이는 남자들이 '맨 박스(man box)'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상자(box) 안에는 크고 힘세고 잘생기고 똑똑하며 부유한 남자만 들어갈 수 있다. 소통과 우정, 공감, 열린 마음, 사랑하고 사랑받는 능력은 상자 밖에 있다. 열심히 경쟁해 상자에 들어가면 권력을 쥐고 지갑도 두툼해지지만, 그 안에서 느끼는 감정은 외로움뿐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맨 박스를 벗어나면 새 세상이 열린다. 미투 운동이 여성에게만 용기 내어 말할 기회를 부여한 것은 아니다. 맨 박스에 갇혀 있던 남성에게도 대화의 장으로 나오라며 보낸 초대장이다. 대화의 문이 열리면서 남자는 여자가 원하는 남자다움이 무엇인지 들을 수 있게 됐다. 여성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도 배운다. 서로에게 무엇이 허용되고 허용되지 않는지 말할 수 있게 됐다. 저자는 '남자다움의 의미를 다시 정의하기'란 주제로 활동하는 '화이트 리본' 등 호주의 남성성 재정의 시민운동 사례를 전하며 남자다움에 변화를 주자고 역설한다.

너무 이상주의적이란 느낌을 주는 부분도 있다. 그는 기본소득 제도에 찬성하면서 이 제도가 도입되면 남자가 돈벌이에서 해방돼 소통·봉사 활동에 나설 수 있다고 말한다. 재원 마련을 위해 일론 머스크처럼 노동보다 자본으로 돈을 버는 수퍼 갑부들에게 고율의 세금을 물려야 한다고도 주장한다. 그러나 머스크는 자본이 아니라 창조적 아이디어와 혁신으로 갑부가 된 사람이다. 혁신을 보상하지 않는 사회가 어떻게 진보하며 풍요를 나눌 수 있을까. 요리하는 남자가 되라거나, 자식에겐 사랑만 보여주는 아빠가 되자는 주장도 그다지 새롭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