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보호관찰소 안병헌 무도실무관은 "성(性) 착취물을 유포한 'n번방' 사건뿐 아니라 디지털 성범죄는 계속 발생하고 있다"며 "안전을 위해 모르는 사람과의 만남을 겁냈으면 좋겠다"고 했다.

지난 25일 아침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20대 남성이 기자 수십 명 앞에 섰다. 미성년자 등을 협박해 성(性) 착취 동영상을 제작하고 인터넷 메신저에 퍼뜨려 돈벌이한 조주빈(25). 피해자 몸에 ‘노예’ ‘박사’ 등의 단어를 칼로 새기게 하고 가학 행위를 강요한 범죄자치고는 평범한 인상이었다. 그는 잔혹한 범행 수법으로 성범죄 피의자 최초로 신상이 공개됐다.

"마트에 장을 보러 갔다가 알고 있는 전자발찌 대상자를 마주쳐 인사한 적이 있어요. 그는 정말 평범하게 생겼습니다. 바지를 걷어 발목을 보지 않는 이상 겉모습만으로 알아볼 수 없어요."

법무부 청주보호관찰소 안병헌(31) 무도실무관이 말했다. 전자발찌 대상자가 발찌를 훼손해 달아나거나 제한 시간에 외출하는 등 규정을 위반할 때 현장에 출동하는 무도(武道)실무관은 태권도, 합기도, 검도, 유도 3단 이상의 유단자들이다. 무도실무관이 되기 전에 태권도 사범으로 일한 안씨는 2013년부터 보호관찰관과 팀을 이뤄 전자발찌 대상자를 감독해왔다.

성범죄자 300여명과 직접 대화하고 부딪쳐본 경험을 가지고 있다. 안씨가 성범죄 대처법을 담은 책 '친밀한 성범죄자'(슬로디미디어 刊)를 최근 펴냈다. 지난 25일 청주에서 그를 만났다.

성범죄자들은 생각보다 평범하다

―우리나라는 치안이 좋다고 합니다만.

"제가 일하며 본 대한민국은 안전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치안이 좋은 나라 축에 들 거예요. 저도 카페에서 잠시 자리를 비울 때 짐을 다 두고 갑니다. 곳곳에 CCTV도 많고요. 하지만 성범죄에 국한하면 이야기가 달라져요."

―성범죄자 관리의 최전선에서 일하고 계신데.

"조주빈, 조두순처럼 뉴스에 나온 성범죄자는 빙산의 일각이에요. 매일같이 성범죄가 쏟아집니다. 대체로 성범죄는 한 사람이 여러 범죄를 저지릅니다. 협박·폭력·살인 같은 강력 범죄로 이어지기 쉽고요."

―악마로 불린 조주빈은 인상이 평범해 놀랐습니다.

"멀끔하고 잘생긴 성범죄자도 많아요. 어떨 땐 나란히 세우면 제가 더 범죄자처럼 보여요(웃음)."

―책 이름이 '친밀한 성범죄자'네요.

"성범죄자가 다 포악하진 않습니다. 매우 친절한 경우도 있어요. 추운 겨울날, 성범죄자 집에 방문한 적이 있어요. 제가 찬 방바닥에 앉으니 전기장판으로 올라오라며 한참을 권하더라고요. 충격이었죠. 친절한가 아닌가로 사람을 넘겨짚을 순 없어요."

―상상이 가지 않네요.

"10년 지기처럼 과도한 친절을 베푸는 사람은 오히려 의심하세요. 범죄자는 아이들에게 접근할 때 상냥한 모습을 보입니다. 아이들은 낯선 사람과 친절한 사람을 잘 구분하지 못해요. 아동이나 여성이 좋아하는 강아지를 미끼로 삼는 성범죄도 있으니, 반려동물 주인이라고 마음을 놓으면 안 됩니다."

그는 "사람은 쉽게 알 수 없는 존재"라며 "성범죄 수법을 알아두고 경계를 늦추지 않아야 범죄를 막을 수 있다"고 했다.

익숙한 모든 것을 경계해라

―성범죄 예방에 가장 중요한 점은.

"경각심입니다. 성범죄자들은 익숙해서 마음이 풀어지는 집이나 휴식하러 떠난 여행지를 노려요. 문단속은 기본이고, 귀갓길도 신경 써야 합니다."

―어떻게 신경 써야 하나요.

"매일 같은 시간에 퇴근하는 여성이라면, 가끔 시간대와 경로를 바꿔주세요. 계획 성범죄를 피할 수 있습니다. 제가 관리하던 성범죄자는 벤치에서 사람들을 살피다가 늘 같은 시간에 지나가는 여성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남자와 둘이서 술 마시지 말라는 지침도 있던데요.

"가해자는 피해자와 단둘이 있을 때 성범죄를 많이 저지릅니다. 직장 상사나 오랜만에 만난 친구, '썸' 타는 관계일 수도 있는데 단둘이 밥 먹고 술 먹지 말라는 건 어려운 문제긴 합니다. 그래도 화장실 간 사이에 술에 뭘 탈지 모릅니다. 모든 남성이 그런 건 아니지만, 성범죄자는 수단과 방법 안 가리거든요."

―피해자가 되지 않으려면, 늘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나요.

"횡단보도 건널 때 가장 중요한 건 좌우를 살펴보는 습관입니다. 언제든 돌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으니까요. 성범죄 예방도 마찬가지예요. 저 골목은 어둡고 CCTV도 없으니 사람이 많고 밝은 길로 돌아간다든지, 창문을 한 번 더 확인한다든지, 성범죄를 피하는 데 도움되는 습관을 만드세요."

―여성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건 아닐까요.

"이수정(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님께 책 검토를 부탁했을 때도 '모든 성범죄가 피해자 문제로 생기는 건 아니다'라는 말을 들었어요. 제가 아는 여동생은 '운이 없으면 당하는 거지, 성폭력이 내가 피한다고 피할 수 있나요'라고 체념하더라고요. 그래도 무방비로 맞닥뜨리기보다 대비한다면 범죄 상황에서 다른 결과를 낳을 수 있지 않을까요. '나는 조심해야 해'라며 살얼음 걷듯 살기보다, 내 생명이 달린 문제이니 여러 대처법을 몸에 익히기를 추천합니다."

―성범죄자는 사고방식이 유별난가요.

"충동적이고 성적 본능이 강하지만 사고방식이 크게 다르진 않아요. 다만 성인지 감수성이 상당히 떨어집니다."

―성인지 감수성요?

"성범죄자에게 '범죄를 저지른 뒤 겁나지 않았냐'고 물어본 적이 있어요. '안 걸리면 그만'이라고 답하더라고요. '다 하는데 나만 재수 없게 걸렸다'고요. 여성을 성적 쾌락을 주고 충동을 해결하는 도구로 생각하는 겁니다."

단호한 대응이 기본, 생명이 우선

―어떤 성범죄자가 전자발찌를 차나요.

"성범죄자 외에도 살인, 강도, 미성년자 유괴 등 특정범죄자들이 전자발찌를 찹니다. 성추행이어도 검사가 재범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하면 전자발찌 부착명령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이번 'n번방' '박사방' 사건 피의자는 발찌를 차게 될 것 같아요."(법무부 보호관찰통계에 따르면 2019년 위치추적 대상자 4563명 중 성폭력 범죄자는 3239명으로 71%를 차지한다.)

―무도실무관은 언제 현장에 출동하나요.

"대상자들이 준수사항을 위반하면 경보가 발생합니다. 법무부 위치추적센터에서 경보를 파악해 대상자에게 전화로 확인하고, 각 지역 보호관찰소에서도 출동합니다. 대상자가 '초등학교에서 50m 이내' 등 출입 금지 구역에 들어가 출동하는 경우가 잦아요. 대상자가 구역을 벗어나도록 지시합니다."

―성범죄자를 대하는 요령이 있다면.

"단호해야 합니다. '어떤 규정을 위반했다. 더 강력하게 관리하겠다'고 문제를 확실히 짚어줍니다. 물리력을 쓰기보다 분위기와 말로만 제압하는 게 선수죠. 태권도는 사용하기 어렵습니다. 발과 주먹을 쓰기 때문에 대상자가 다칠 수 있거든요. 체포술을 따로 배워 현장에서 활용하고 있습니다."

―술에 취한 대상자도 많을 것 같습니다.

"술 취한 사람은 어린아이와 같아요. 강력히 제재하기보다 '들어가시죠. 세상이 다 그렇죠'라고 다독이고 달래는 방법이 효과적입니다."

―피해자가 성폭력 상황에서 범인을 대할 때도 쓸 수 있는 요령인가요.

"저희처럼 관리하는 범죄자의 성향을 파악하고 있어야 가능합니다. 성범죄 문제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의사를 밝히는 것이 원칙입니다."

―범인을 자극하는 것이 더 위험할 수도 있다던데.

"범인의 성향과 상황에 따라 대응해야 하기에 딱 잘라 말하기 어렵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생명입니다. 주위에 사람이 많을 땐 소리쳐서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단둘이 있는 공간에서 흉기를 들었을 때는 범인을 설득해보는 것이 좋겠죠."

―사람을 잘 믿지 않는 성격인가요.

“잘 믿습니다. 고소공포증은 있지만, 사람은 안 무섭거든요. 다만 워낙 범죄 예방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다 보니까, 범죄가 일어날 만한 상황에 민감합니다. 골목에 고등학생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으면, 누가 훈계하다가 싸움이 생길 수도 있잖아요. 제가 먼저 가서 ‘담배는 숨어서 피는 게 좋겠다’고 타이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