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상공인들이 25일 오전 대구 북구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대구북부센터에서 정책자금 확인서발급 및 상담 등을 위한 번호표를 받기 위해 줄지어 서 있다. 뉴시스


'마스크 줄서기'에 이어 '자금 신청 줄서기'까지. 25일부터 시작된 '코로나19 경영애로자금 직접 대출' 신청에 이날 하루에만 1만5000여명의 소상공인이 몰려들며 '줄서기 대란'이 벌어진 데는 현장의 정책 집행을 고려한 사전 준비 없이 '일단 발표하고 보자'고 밀어붙인 정부의 안이한 탁상행정이 도사리고 있었다. 일부 소상공인들은 예상보다 높은 이자율에도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자구책 없이 정부 방침만 따라가다 더 어려운 상황에 빠졌다는 한숨까지 쏟아진다.

소상공인업계에서는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소진공)에 전국 630만명의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자금 지원을 일괄적으로 맡긴 것이 애초에 무리였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소진공이 운영하는 전국 62개 소상공인지원센터는 대부분 센터장 포함 3~5명으로 운영되는 작은 조직이다. 소진공 전체 직원은 600여명이다.

소진공측은 "센터마다 하루 30~50명씩 상담을 해오다 갑자기 수백~수천명이 몰려드니 인력 구조 상 도저히 감당이 되지 않았다"면서 "현재 본사 인력도 모두 현장 상담에 투입된 상황"이라고 했다. 전국에 대규모 지점망을 갖고 있는 시중 은행의 협조를 받는 방법도 있지만, 빈약한 조직을 가진 정부 산하 기관에 떠넘기는 '쉬운 길'을 택하면서 소상공인들의 불편이 가중된 셈이다.

소상공인들에게 다소 까다로운 신청 과정도 줄서기 사태를 초래했다. 경영애로자금 직접 대출 신청의 경우 사업자등록증, 재무재표증명서 혹은 부가가치세과세표준증명서, 국세·지방세납세증명서, 임대차계약서 사본, 주민등록등본, 통장 사본, 매출감소확인서류 등 총 7종의 서류를 갖춰 소상공인지원센터를 방문, 대출 약정서를 작성해야 한다.

하지만 센터를 방문하는 소상공인 중 이런 구비 서류를 알고 준비해 오는 경우는 10명 중 1~2명도 안 됐다. 소진공 관계자는 "홈페이지(semas.co.kr)을 통해 신청 방법과 필요 서류를 자세히 안내하고 있지만, 50~60대 소상공인이 많다 보니 홈페이지 확인 없이 무작정 센터를 찾아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 중·장년 소상공인 상당수가 몇 시간씩 줄을 서 상담만 받고 돌아가고 있다.

3~5일 내에 1000만원까지 대출해주는 긴급 경영애로자금 대신, 시간은 한 달 이상 걸리지만 7000만원까지 대출 가능한 일반 소상공인 정책자금을 상담하러 온 사람마저 몰려들며 줄은 더 길어졌다. 이 때문에 서류를 제대로 준비해 온 사람도 줄을 늦게 서면 신청 접수를 못하고 발길을 돌리는 일이 속출했다. 25일에는 접속이 몰리면서 인터넷 홈페이지마저 수시로 먹통이 돼 혼란은 더했다.

일반 소상공인 정책자금에 대해서는 금리가 지나치게 높다는 불만도 나온다. 서울 강북구의 한 소상공인은 "몇 시간 기다렸다가 소상공인정책자금 상담을 받았는데, 애초에 연 1.5%라던 금리가 알고 보니 연 3%에 육박했다"면서 "기준 금리 연 0.75% 시대에 이게 무슨 초저금리냐"고 했다. 정부에서 홍보한 '연 1.5%는' 기본 이율이고, 실제로는 신용등급에 따라 추가 금리가 붙는데다, 보증서를 떼주는 지역신보에 연 0.8%에 해당하는 수수료까지 내야 해 결국 최종 금리는 2.3~3.0% 사이라는 것이다.

정책만 앞서가고 지원 현장에서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원성도 계속 되고 있다. 보증과 대출을 실행하는 창구 직원들이 여전히 소상공인 금융지원의 자세한 내용을 모른다는 것이다. 대전에서 프랜차이즈 음식점을 운영하는 윤모(50)씨는 "지역신용보증기금과 은행 창구 직원들도 너무 힘들어 정부 비판을 하더라"면서 "그들의 지치고 힘든 모습을 보내 내가 더 미안했다"고 말했다.

소진공이 아르바이트생을 배치하고, 지자체에서 접수 인력 지원에 나서면서 26일부터 줄서기는 덜해지고 있다. 하지만 서류 준비를 위해 관공서를 오가야 하는 불편은 여전하다. 서울의 한 소상공인지원센터 직원은 "행정 전산망을 통해 일부 서류를 직접 발급·확인해 주고 있지만, 과세표준증명서 같은 서류는 아직 뗄 수가 없어 완벽한 '원스톱 서비스'는 못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소상공인들 사이에서는 격앙된 반응도 나오고 있다. 서울 관악구에서 학원을 운영하는 정모(47)씨는 "정부 지침만 따를 게 아니라 진작에 알아서 살 길을 찾았어야 했다"면서 "대책만 기다리다 폐업을 면치 못하게 생겼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