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73) 전 바른미래당 대표와 서청원(77)·홍문종(65) 의원이 26일 각각 민생당과 우리공화당, 친박신당의 비례대표 2번을 받아 4·15 총선에 출마하기로 하면서 더불어민주당과 범여 군소 정당이 강행 처리한 연동형 비례제 선거법의 민낯이 드러났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작년 연말 범여권 정당들이 선거법 개정을 밀어붙인 명분은 군소 정당의 당선자 수를 늘려 양당제 폐해를 줄이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1·2당이 각각 위성 정당을 만들면서 양당 구도는 더 공고해졌고, 소수당에 돌아갈 수혜마저도 '올드 보이' 정치인들이 볼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민생당은 이날 발표한 비례대표 후보 명단에서 손 전 대표를 2번에 배치했다. 제1 야당 대표를 지낸 4선 의원 출신인 손 전 대표는 전날 밤 비례대표 공천을 신청했다.

손 전 대표 측은 민생당 후보 공모 마감 날인 23일까지도 "백의종군 자세를 가진 손 전 대표가 비례 공천을 신청할 리가 없다"고 했다. 그러나 하루 만에 손 전 대표가 "당의 요청"이라며 공천을 신청하고 남성 최상위 순번을 받아 총선에 나선 것이다.

후보 등록하기전 체온 검사 받는 고민정·오세훈 - 4·15 총선에서 서울 광진을에 출마하는 더불어민주당 고민정(위), 미래통합당 오세훈(아래) 후보가 26일 광진구 선거관리위원회에서 후보 등록 신청에 앞서 체온을 재고 있다.

우리공화당도 이날 서 의원을 비례 2번으로 공천했다. 서 의원은 경기 화성갑을 지역구로 둔 현역 최다선(8선) 의원이다. 친박신당 비례 2번 홍 의원도 경기 의정부을에서 4선을 했다. 지난 정권 때 실세로 활동한 서·홍 의원은 현 정권 출범 후 옛 자유한국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활동하다 군소 친박계 정당의 비례 2번 자리를 받았다. 이들은 "당의 결정"이라고 했다.

특히 손 전 대표는 지난 2018년 12월 단식까지 하며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주도한 장본인이다. 당시 그는 "일흔을 넘은 나이에 무슨 욕심을 갖겠느냐"며 연동형 비례제 도입은 후배 정치인들을 위한 정치 개혁이라고 했다. 작년 4월엔 한국당의 반대에도 민주당과 손잡고 선거법 개정안 패스트트랙 지정을 밀어붙였다. 정치권에서는 "현 정부 총리 자리를 노린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그는 "내 선의를 폄훼하지 말라"고 했다. 그런 그가 후보 등록을 하루 앞두고 기습적으로 공천을 신청하고 비례 2번을 받자 "모든 게 금배지 때문이었느냐"는 비판이 당내에서도 터져 나왔다. 그는 지난달엔 "공짜로 비례대표 의원을 할 생각은 안 한다"고 했다.

소수 정파의 원내 진입 길을 열어준다던 연동형 비례제가 특정 정치 세력의 기득권 유지 수단이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친문(親文)' 비례 정당을 내세운 열린민주당은 지난 24일 비례대표 후보로 최강욱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을 2번에,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을 4번에 배치했다. 최 전 비서관은 조국 전 법무장관 아들에게 허위 인턴 증명서를 발급한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앞두고 있다. 김 전 대변인은 더불어민주당 공천을 신청했다가 '흑석동 부동산 투기 논란'으로 불출마를 선언했었다.

열린민주당을 이끄는 정봉주 전 의원도 '미투' 논란으로 민주당 공천에서 배제됐고, 손혜원 의원은 부동산 투기 논란이 일자 민주당을 탈당한 인물이다. 이들의 '원적(原籍)' 정당인 민주당에서도 거리를 뒀는데 '조국 수호'를 내걸고 연동형 비례제의 틈을 파고들어 정치적 재기에 나섰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국민의당도 이태규·권은희 의원을 비례 2·3번에 공천해 "이게 안철수 대표가 내건 중도 실용이냐"는 말이 나온다.

손 전 대표와 서·홍 의원이 원내에 다시 진입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이날 리얼미터가 발표한 정당 투표 의향 조사 결과, 민생당은 2.4%, 우리공화당 2.0%, 친박신당 2.7%를 기록했다. 비례 의석 배분 기준선인 3%를 넘는 정당은 한 곳도 없다. 열린민주당과 국민의당은 각각 11.6%와 4.9%였다. 실제 선거에서 이 득표율을 얻으면 열린민주당은 7석, 국민의당은 3석 정도를 얻을 것으로 보여 연동형 비례제의 모순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