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해원 글지기 대표

꽃이 피면 뭐 하나. 상춘(賞春)은 고전에서나 즐기는 사치가 된걸. 월급이 두 달째 밀렸다는 후배는 한숨도 잊었다. 전화 걸어놓고 입 못 떼던 다른 친구가 급전(急錢) 얘기를 신음하듯 흘린다. 진작 봉오리가 벙근 목련, 이제야 창을 열었다. 수상한 시절을 눈치챘음인가. 바깥바람 쐐도 되는지 헷갈린다는 듯 뭉그적대더니.

'한반도의 봄' 노래가 2년 채 안 됐건만 북녘에서는 여전히 미사일을 쏴 댄다. 도대체 모르겠다. 합참(合參)에서 겨우 한다는 말도 그렇다.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북한의 이런 군사적 행동은 대단히 부적절한 행위"라나. 평시라면 무력시위 괜찮고? 바이러스 대란 아니면 아예 입 다물게 생겼다.

대통령이 말했단다. "사재기 없는 나라는 국민 덕분, 감사한 마음…." 나라가 국민 덕을 본다? 아리송하다. 아랫사람이 덧붙인다. "사재기가 없는 유일한 나라라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를 믿고 따라준 국민 덕분"이라고. 아하, 정부가 믿음직해 국민이 사재기를 안 한다. 나라를 잘 이끄는 정부라고 외국에서 칭찬받는다. 그래서 고맙다. 다 사실이라 치자. 정부를 위한 국민인가, 국민을 위한 정부인가. '사재기 없는 나라 이룬 국민을 존경'해야 하는 것 아닐까. 혼란스럽다.

새 국무총리가 대통령의 협치(協治) 주문에 답한다. "최선을 다해서 노력을 해보고 싶습니다." '해 보고 싶다'와 '해 보다'는 엄연히 다르건만. '싶다'는 '(시험 삼아 할) 마음이 있음'이다. 단지 '해 보려는 뜻이 있음'과 '해 보겠다'는 다짐이 과연 같은가. '해 보다'와 '하다'도 마찬가지. 보조동사 '보다'를 쓰면 그냥 한번 한다는 말인데, 그래서야 될 일인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하면 좀 좋았을꼬. '해 보고 싶다' '해 보겠다' '하겠다' 가운데 총리 마음은 정녕 어디 있는지.

봄이 울부짖든 말든, 여의도는 밥그릇 챙기느라 정신없다. 병마(病魔)로, 생활고로 유권자가 나동그라지는데…. 꽃이 피면 뭐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