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아람 문화부 차장

두려움은 '세 살 버릇'도 이긴다. 손톱을 물어뜯는 어릴 때부터의 나쁜 습관을 마침내 고쳤다. 세상만사엔 양면이 있다더니, '역병(疫病)의 시대'를 버텨내다 얻은 뜻밖의 소득이다. 이 이야기를 소셜미디어에 적었더니 "제 딸 손톱 물어뜯는 습관도 고쳤어요" "제 아들 손톱 물어뜯는 버릇이 진짜 안 고쳐지는데 이번 일로 스스로 좀 노력은 하는 것 같아요" 등의 댓글이 달렸다. 다들 손 위생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모양이다. 사람들 말마따나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세상'을 살고 있는데, 이처럼 손의 존재를 민감하게 인식해 본 것도 난생처음이다.

바야흐로 손의 '수난 시대'이기도 하다. 종일 씻고 소독제를 사용했더니 손이 건조하다 못해 부르터 피가 나기 시작했다. 손 소독제와 핸드 크림을 번갈아 바르면서 '병 주고 약 준다'는 속담은 딱 이럴 때 쓰는 거구나, 생각한다. 이 와중에도 "나는 버릇처럼 소독제 바르고 남은 걸 목에 바르게 돼" 하는 친구의 말에 웃는다. 남성 독자들을 위해 덧붙이자면, 손에 바르고 남은 로션이 아까우니 목에도 바르던 평소 습관이 소독제 쓸 때도 무심코 적용된다는 이야기다. 인간은 강하다. 비탄 속에서도 해학은 싹트고 전장(戰場)에서도 웃음이 꽃핀다.

재택근무를 하는 날이면 무엇보다도 정신적 피로감이 덜하다. 대중교통에서 사람들과 부대낄 일도 없고, 여럿이 사용하는 문 손잡이를 잡거나 엘리베이터 단추를 누를 일도 줄어드니 사무실로 출근할 때보다 손을 덜 씻어도 되기 때문이다. 강박적으로 손을 씻는 게 힘든 건 그 행위 자체가 버겁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끊임없이 스스로를 불결하다 인식하는 정서적 무거움이 크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존 싱어 사전트의 1889년작 ‘맥베스 부인을 연기하는 엘런 테리’(부분).

헤아릴 수도 없이 손을 씻은 날, 셰익스피어 희곡 '맥베스'를 다시 읽었다. 왕위에 눈이 멀어 왕을 살해한 스코틀랜드 장군 맥베스는 범행 직후 죄책감을 못 이겨 말한다. "이 무슨 손이냐? 하! 손이 눈을 뽑는구나. 저 대양 모든 물로 내 손에서 이 피를 씻어낼 수 있을까? 아냐, 내 손이 오히려 광대무변(廣大無邊) 온 바다를 핏빛으로 물들여 푸른 물을 다 붉게 하리라."

남편의 살인을 부추긴 맥베스 부인은 몽유병과 신경쇠약에 시달리며 계속해서 손을 씻는다. 그는 아무리 손을 씻어도 핏자국이 지워지지 않는 것 같다는 망상으로 고통받으며 "저주받은 자국아, 없어져라! 제발 없어져!"라고 외친다. "아직도 여기에 피 냄새가 남았구나. 아라비아 향수를 다 뿌려도 이 작은 손 하나를 향기롭게 못하리라. 오! 오! 오!" 탄식하는 부인을 본 시녀는 말한다. "내 가슴에 저런 마음을 지니지는 않겠어요. 저 몸값 전부를 다 준다 하여도."

꺼림칙한 일이 있는 사람이 손을 씻고파 하는 심리를 '맥베스 효과' 혹은 '맥베스 부인 효과'라 부르는 것은 '맥베스'의 이 장면들에서 유래한 것이다. 미국 화가 존 싱어 사전트(1856~1925)가 1889년 그린 '맥베스 부인을 연기하는 엘런 테리'는 셰익스피어 작품 연기로 특히 호평받은 영국 빅토리아 시대 명배우 엘런 테리를 모델로 했다. 사전트는 녹색 드레스를 입고 붉은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맥베스 부인이 광기에 사로잡힌 얼굴로 왕관을 쓰려 하는 순간을 화폭에 담았다.

왕관을 든 저 희디흰 손에 왕의 피가 아니라 손 씻기를 배겨내지 못한 핏방울이 맺히리란 걸 경험상 알고 있다. 팬데믹 시대의 씁쓸한 부산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