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시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의 '매도 행진'이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코스피가 8%대 급등한 24일 외국인 순매도 규모가 800억원대로 떨어지면서 다소 진정되는 듯했으나, 25일엔 다시 3360억원으로 확대됐다. 코로나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이 선언되고, 미국과 유럽 등에서 확산세가 나타난 이달 들어서만 외국인은 코스피에서 11조1554억원어치를 순매도한 것으로 집계된다.

그러나 이 와중에도 외국인 투자자가 사고 있는 종목들이 있다. 외인들은 가격 매력보다는 확실한 '성장성'에 초점을 맞춰 주식을 고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장부가치 소용없다… '성장주' 골라

외국인 매도세는 경기 둔화의 여파를 고스란히 맞게 될 반도체, 에너지, 자동차, 건설, 조선 업종 등 대형주에 집중되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달 들어 25일까지 외국인이 유가증권시장(코스피)에서 가장 많이 판 종목은 삼성전자(-4조7664억원)였다. 이어 SK하이닉스(-9252억원), 현대차(-7558억원), 삼성전자우(-5920억원), 삼성SDI(-3432억원), LG화학(-3397억원) 등 순이었다. 외국인 매도 폭탄에 이 종목들 주가는 우수수 떨어졌다. 삼성전자(-10.24%)를 비롯해 외국인이 많이 판 상위 10종목은 모두 3월 수익률이 마이너스(-)였다.

이는 '주가가 쌀 때 사놓자'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을 대거 사들이고 있는 국내 개인 투자자와는 상반된 움직임이다. 전문가들은 경기 침체를 목전에 둔 지금, 외인들이 글로벌 경기 영향을 많이 받는 이 업종들의 실적 불확실성이 커졌다고 판단해 매도에 나선 것으로 분석했다. 신한금융투자 김상호 연구원은 "올해 업종별 외국인 매매 현황을 보면, 외국인은 (기업 장부 가치에 비해 주가가 싼) '가치주' 중심으로 팔았다"며 "이는 과거 장부가치를 믿고 투자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반대로 외국인들은 올 들어 헬스케어, 소프트웨어, 미디어 업종 등 경기 영향이 비교적 적고, 차별화된 경쟁력으로 이익이 늘어날 것으로 보이는 '성장주'를 주머니에 담았다. 3월 들어 외국인이 많이 산 종목 1위는 셀트리온(+3033억원)이었고, 넷마블(+855억원)과 삼성바이오로직스(+779억원)가 각각 4위와 5위를 차지했다. 셀트리온(+7.65%), 넷마블(+7.45%), 삼성바이오로직스(+2.48%)는 이달 폭락장 속에서도 주가가 상승했다.

셀트리온의 경우 확연한 수익성 개선이 나타나고 있고 앞으로도 실적 기대가 높다는 평가다. 최근 코로나 감염증 치료제 개발에 진척이 있다고 발표해 급등세를 보이기도 했다. SK증권 이달미 연구원은 "작년 4분기 실적이 시장 전망치를 웃돌았고, 올해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도 점유율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며 목표주가를 올렸다. 넷마블도 이달 출시한 신작 게임이 세계 시장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어 2분기부터 본격적으로 실적 성장이 나타날 것으로 전망됐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공장 증설로 내년부터 글로벌 생산 규모가 크게 늘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삼성전자, 하루 만에 외인 순매도로

개인 투자자들이 베팅하고 있는 반도체 업종은 외국인 자금이 언제쯤 돌아오게 될까. 코로나 사태 이후 외국인은 반도체 업종을 줄기차게 팔아왔다. 이달 5일부터 23일까지 외국인은 14거래일 연속으로 삼성전자 주식을 4조4155억원어치 순매도했다. 그러나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무제한 양적완화' 발표와 우리나라 정부의 금융시장 안정화 조치에 국내 증시가 8%대 급등한 24일에는 외국인이 삼성전자를 순매수(+1318억원)했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 하락장에 삼성전자를 사모은 개인 투자자들의 기대감도 커졌다. 하지만 외국인은 하루 만에 다시 삼성전자 순매도로 돌아서, 25일 하루에만 삼성전자 주식을 1333억원(장 마감 기준) 순매도했다. 전문가들은 "여전히 글로벌 경기에 변수가 많고 세계 증시 변동성이 큰 상황"이라며 "반도체 업종으로 외국인 자금이 돌아올 것으로 낙관하기에는 이르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