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와 의회가 25일(현지 시각) 새벽 코로나발(發)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2조달러(약 2500조원) 규모의 경기 부양책에 합의했다.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다. 이번 부양책에는 최상위 고소득층을 제외한 미국인 전체에게 1인당 현금 1200달러를 지급하는 방안과 5000억달러 규모의 기업·지방정부 구제 금융, 3670억달러의 중소기업 자금 지원, 1500억달러 규모의 실업급여 확충 및 1300억달러의 병원 지원 등이 포함된다고 워싱턴포스트(WP)는 보도했다.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이날 새벽 "이번 부양책은 전시(戰時)와 같은 수준"이라며 "상원은 코로나 바이러스를 물리치고 미래를 되찾기 위해 필요한 탄약을 확보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공화·민주 양당은 이날 오후 의회에서 관련 법안을 합의 처리하기로 했다.

◇"금융 위기 때보다 빠르고 크다"… 증시 급등

이번 부양책은 규모와 범위, 속도 모든 면에서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당시의 경기 부양책을 뛰어넘었다. 2008년에는 미 의회에서 구제금융 최종 합의에 이르기까지 4개월이나 걸렸지만, 이번엔 일주일 만에 속전속결로 의회 합의가 이뤄졌다. 지원 규모도 2조 달러 이상으로 1조5000억달러였던 금융 위기 때보다 훨씬 크다. 글로벌 금융 위기 때 금융회사 등 대기업 위주였던 지원 대상은 코로나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가계와 소상공인으로 대폭 확대했다.

전례 없는 부양책 합의가 임박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전날인 24일부터 미국 증시는 폭등세를 연출했다. 이날 뉴욕 증시에서 다우지수는 전날보다 2112.98포인트(11.4%) 폭등한 20704.91에 거래를 마쳤다. 대공황 직후인 1933년 이후 87년 만에 최대 상승률이다. S&P500 지수와 나스닥지수도 각각 9.4%, 8.1% 급등했다.

코로나 사태 이후 타격이 컸던 에너지주와 항공주가 경기 부양책 수혜를 볼 것이라는 기대감에 큰 폭으로 오르며 상승세를 이끌었다. 미국 에너지 회사 셰브론은 22.7%나 주가가 뛰었고, 항공사 아메리칸에어라인과 보잉도 20% 이상 반등에 성공했다. 글렌미드 수석전략가 제이슨 프라이드는 월스트리트저널에 "시장이 경기 부양 합의에 확실히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25일 아시아 주요 증시도 미국발 훈풍 덕분에 일제히 급등했다. 이날 코스피는 5.9% 올라 1704.76에 거래를 마쳤다. 코스닥도 5.3% 올랐다. 일본 닛케이는 8.0% 폭등했고, 중국 상하이(2.2%)와 홍콩 항셍(4.0%) 지수도 크게 올랐다.

◇실물 지표는 타격 본격화

코로나 사태 이후 미끄러져 온 증시가 이날 급반등했지만 이런 상승 기세가 지속될지는 미지수다. 속속 나오는 실물 지표에 코로나로 인한 타격이 본격적으로 반영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이 발표한 미국의 3월 복합 구매관리자지수(PMI)는 40.5로 전월(49.6)보다 크게 하락했다. 2009년 10월 이후 가장 큰 하락 폭이다. 출하·생산·재고·고용 등을 종합해 산출하는 PMI는 경기를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다. 50 이상이면 경기 확장, 50보다 낮으면 경기 수축을 뜻한다. 유로존 PMI는 전월 51.6에서 31.4로 폭락해 1998년 7월 조사 시작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IHS마킷 수석 경제학자 크리스 윌리엄슨은 "2분기 국내총생산 수치는 크게 하락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표적 비관론자인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경영대 교수도 암울한 전망으로 시장의 환호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는 24일 야후파이낸스 인터뷰에서 "V자나 U자형 회복은 기대하지 마라. L자형도 아니고 I자형으로 수직 낙하하는 충격이 경제에 닥칠 것"이라고 했다. 이어 "금융 위기보다 훨씬 나쁠 것이다. 대공황보다 더한 대대공황(Greater Depression)으로 치달을 수 있는 요건도 갖춰지고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