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의 비례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이 당선권에 친문(親文) 성향 인사를 대부분 배치한 비례대표 후보 명단을 발표했다. 지난 대선 때 문재인 캠프 공동선대위원장을 지낸 여성학자, 사내 ‘적폐 청산’에 앞장섰던 방송사 간부, 탈원전운동을 하고 이 정부 에너지 정책 로드맵을 만들었다는 인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 이해찬 대표(왼쪽), 이인영 원내대표(오른쪽).

사 등이 당선이 확실한 상위 순번을 차지했다. 민주당이 당초 비례대표로 공천하기로 했던 인사들을 포함하면 당선권이라고 여겨지는 더불어시민당의 후보 20여명 대부분이 친문 인사들이라고 한다. 이렇게 노골적인 특정 계파 일색의 비례대표 공천은 계파 정치가 좌지우지했던 과거 3김(金) 시절에도 없었을 것이다. 앞으로 민주당에서 당내 민주주의나 활발한 토론 등은 꿈도 꿀 수 없을 것이다.
지역구에 출마하는 민주당 후보 253명 가운데서도 이른바 비문(非文)으로 분류되는 인사는 10명 안팎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나머지는 대부분 친문 성향이거나 운동권 출신 인사들로 채워졌다. 사실상 '친문당'을 만들기 위한 공천을 한 것이다. 공천 과정에서 불출마를 선언하거나 탈락한 현역 의원이 30여명이지만 이들 대부분은 비문이고 이들 대신 공천장을 받은 인물은 대부분 청와대 출신이거나 친문을 자처하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그나마 당내에 있던 다른 색깔조차 지워 버린 것이다.
조국 사태 당시 소신 발언을 했던 의원은 친문 신인에게 경선에서 져 탈락하고, 울산 선거 공작의 핵심 피고인은 경선에서 이겨 출마하는 것이 민주당 공천의 실상을 잘 보여 준다. 코로나 사태 초기 '대구 봉쇄'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의원이나 공항에서 신분증 제시를 요구하자 고성을 지르는 등 '갑질'을 했던 의원도 다시 공천을 받아 총선에 출마한다. 이들은 당내에서 핵심 친문 의원으로 분류된다.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에서 대통령과 가까운 사람들이 유리한 입지를 차지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비례대표는 물론 지역구까지 대통령 한 사람의 세력이 공천을 독식한 경우는 우리 정당사에서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지난 총선에서 여당이 친박 감별까지 해 논란을 일으켰지만 이번 민주당에 비하면 숫자나 비율이 훨씬 낮았다. 다른 민주국가에서 이런 일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비례당을 절대 안 만들겠다'던 민주당은 말을 뒤집어 비례당 창당에 나서며 군소 정당과의 연합이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하지만 연합했다는 군소 정당 출신은 단 두 명만 비례 후보가 됐다. 구색만 맞추고 토사구팽한 것이다. 민주당은 직전에 다른 세력과 비례정당을 만들겠다고 하다가 이들의 지분 요구가 커지자 파트너를 바꾸기도 했다. 지금 보면 친문 일색의 당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민주당의 또 다른 비례정당이라는 열린민주당은 조국 사태에 연루돼 재판에 넘겨진 전 청와대 비서관과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청와대를 떠났다가 민주당 공천을 못 받은 전 청와대 대변인 등을 당선권에 배치하는 비례 명단을 발표했다. 이들은 공공연히 희대의 파렴치 조국씨를 비호하며 '친문 호위무사'를 자처하고 있다. 그런데 이해찬 대표는 "(이들과) 합당은 어렵지만 총선 후 연합은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친문이기만 하면 어떤 결격 사유가 있더라도 손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