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 총선 비례대표 투표용지 길이가 역대 최장(最長)이 될 전망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작년 말 제1야당을 빼고 군소 정당에 유리한 선거법 개정안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국회 입성을 노리는 신생 정당들은 투표용지 앞쪽에 이름을 올리기 위해 '가나다순'을 염두에 두고 당명에 '가자' '국가' '국민' 등을 넣는가 하면, 민주당 등 기존 정당들은 비례위성정당을 만들어 현역 의원을 보내는 등의 촌극을 벌이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24일 현재 창당 과정을 거치고 등록한 정당이 모두 50개라고 밝혔다. 이 중 20개가 선거법 개정 이후인 올해 창당했다. 현재 창당을 준비하는 창당준비위원회도 27개다. 후보 등록 마지막 날인 오는 27일까지 얼마나 더 많은 정당이 총선에 나설지 미지수다. 선관위 관계자는 이날 "등록 정당 50개가 모두 후보를 낼지는 아직 모르는 상황"이라면서도 "과거 총선보다 당이 많아질 경우를 대비하고 있다"고 했다. 4년 전 총선에서는 등록 정당 27개 중 21개 당이 비례 후보를 냈었다. 당시 비례대표 투표용지 길이는 33.5㎝였다. 올 초 선관위는 39개 정당명을 기재할 경우의 투표용지 길이를 52.9㎝로 예측한 바 있다. 선관위는 "기표란 높이를 1㎝, 상하 간격을 0.2㎝로 계산할 경우 50개 정당이 모두 후보를 냈을 때 투표용지 길이는 66.3㎝로 예상한다"고 했다. 선관위는 24개 이상 정당이 후보를 낼 경우에 대비해 2002년 이후 처음으로 수개표 준비를 하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는 범여권이 주도한 선거법 개정안에 따라 군소 정당들이 비례대표 선거에 대거 출사표를 냈다. 특히 거대 양당인 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이 더 많은 의석을 얻기 위해 자당(自黨) 후보는 내지 않고 비례위성정당을 만들면서 비례투표 용지상 정당 순서까지 뒤죽박죽이 된 상황이다.

원래대로라면 현역 의원이 많은 순으로 민주당이 1번, 통합당이 2번, 민생당이 3번, 정의당이 4번을 가져가야 한다. 그러나 민주당과 통합당이 후보를 내지 않으면서 18명의 현역 의원이 있는 민생당이 투표용지상 가장 위에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그다음으로는 통합당의 비례당인 미래한국당(10석)이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통합당이 10여명 의원을 한국당에 추가로 '파견'하면 한국당이 비례 1번 기호를 가져가게 된다. 앞서 통합당은 이번 총선에 불출마한 한선교 의원 등 9명을 한국당으로 보냈다. 민주당은 자신들의 비례당인 더불어시민당이 한국당 뒤에 이름을 올릴 수 있도록 '현역 의원 꿔주기'를 시작했다. 민주당은 최대 7명까지 시민당에 파견 보낼 계획이다. 이 작업이 완료되면 시민당은 세 번째에 이름을 올리게 될 가능성이 크다.

시민당 뒤로는 현재 의석 6석인 정의당, 2석인 자유공화당 순이 될 전망이다. 현역 의원이 1명씩인 민중당, 국민의당, 열린민주당, 친박신당은 지난 총선에 비례 후보를 냈던 민중당이 우선이고, 나머지는 기호 추첨을 하게 된다. 이후로는 '가나다' 순으로 배치된다. 이렇다 보니 투표 용지 앞쪽에 들어가기 위해 '가자환경당' '국가혁명배당금당' 등과 같은 희한한 이름의 정당들이 만들어졌다는 분석이다.

정당들이 투표용지 순번을 욕심내는 이유는 유권자들이 앞쪽에 있는 정당에 투표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에서는 유권자들을 헷갈리게 할 만한 비슷한 이름의 정당도 여럿 출사표를 냈다. 더불어시민당, 열린민주당, 미래민주당 등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통상 여야 거대 정당이 투표용지 1, 2번에 들어가 있어 왔는데 이번엔 상황이 달라져서 유권자들이 착각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선관위는 기존 투표지 분류기를 사용할 수 없을 것이라 보고 수개표 상황에 대비한 모의훈련을 진행 중이다. '전자개표기(투표용지 분류기)'로 개표하기가 사실상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다. 정치권에선 "20년 전인 2000년 총선 때의 수개표 시절로 다시 돌아가는 코미디가 벌어질 판"이라는 얘기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