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고문

미래통합당의 지역구 공천에서 낙천된 정병국 의원은 “저의 희생이 어렵게 통합한 보수의 분열을 막고 총선 승리를 통해 문재인 정권을 심판하는 계기가 된다면 기꺼이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그는 또 “늘 개혁하자고 하면서 그 개혁의 칼이 자신에게 오면 ‘이건 잘못된 것’이라고 하는데 그런 악습에 본보기를 보이고 싶었다”고 했다. 그의 포인트는 “문 정권의 폭정을 막는 데 힘을 모으자”는 데 있다.

그런 살신성인의 자세를 보인 정치인이 언제 있었던가 기억이 없다. 무엇보다 지금 이 시국에서 그가 던진 카드는 정말 오랜만에 보는 신선함이었다. 더구나 공천에서 떨어지자 미래통합당을 탈당해 무소속 출마를 준비하는 거물급 정치인이 홍준표, 김태호씨 등 10여 명에 이르는 상황에서 그의 결단은 더욱 돋보이는 것이었다.

총선의 상황은 코로나 사태 이전까지만 해도 야당에 유리하게 전개되는 듯했다. 문 정권은 조국 사태, 감찰 무마 사태, 그리고 울산 선거 개입 사태 등이 나라의 기강을 위험에 빠뜨리며 몰염치의 일로로 가고 있었다. 경제는 소득 주도 성장에서 시작된 엇박자가 탈원전 기업 파탄으로 이어지고 안보는 이제 국민의 관심에서조차 배제된 상황이었다.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도 정부의 초기 대응 실패가 국민의 분노를 사는 듯했다. 그래서 야당이 승기를 잡았다고 여길 만했다.

하지만 문 정권은 그리 만만치 않았다. 기왕에 보았듯이 이들은 안면몰수에 능하고 실책을 기회로 전환하는 데 특이한 기술을 갖고 있다. 우한 바이러스 사태만 해도 야당이 그들의 호기(好機)로 보았음 직하지만 여권은 자화자찬으로 반전(反轉)시키고 있다. 게다가 정부의 자금 살포와 야당의 무기력 등이 합쳐져 그래도 '지리멸렬한 야당'보다 '현직'이 낫지 않겠느냐는 쪽으로 선전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후보들은 이미 선거 전선에서 "그간의 행태로 봐서 야당이 나라를 끌고 가기는 어렵지 않겠느냐"고 유권자들에게 비교우위를 들고나오고 있다. 여권은 그야말로 얼굴에 철판 깔고 총선에 임하고 있다. 조국 맹신주의자들이 위성 정당을 차리고 보란 듯이 개점 선언을 하는가 하면 전직 청와대 핵심 인사들이 이에 가담하면서 더불어민주당이 무색할 정도로 '호위무사'를 자처하고 있다.

그런 마당에 미래통합당은 지역구와 비례대표 선정에서 '씁쓸한' 잡음에 휩싸였다. 또 모처럼 보수 야권의 대동단결을 호소하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옥중 호소에 힘입어 친박을 포용할 좋은 기회인데도 오히려 오락가락 행보를 거듭하고 있어 일부에서는 황교안 리더십까지 들고나오는 상황이다. 아무리 공정한, 사천 없는 공천이라고 해도 거기에서 '정치'를 배제하면 아주 교과서 같은 메마름만 남는다. 예를 들어 전 대통령의 메신저 격인 유영하 변호사를 그 무슨 '원칙의 틀'에 넣어 저 뒤로 빼돌리는 등의 교과서적인 '공정'은 결코 상황을 고려한 '좋은 정치'는 아닌 것이다.

황교안 대표는 무소속 출마자들을 향해서 유혹을 내려놓고 소탐대실하지 말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런 대안이나 해결책의 제시 없이 어디까지나 말에 그치고 있다. 이탈자들을 만나 간곡히 설득하는 '대접'도 없었던 것 같고 그들과 신인들을 가산점을 주는 방식으로라도 경선에 부치는 대안도 모색하지 않았다. 선대위원장 영입한다고 엉뚱한 곳을 헤맨 것도 그렇다. 그러면서 밀실 정치, 계파 공천 없었으면 그것이 장땡인가? 역대 선거 때마다 수십 차례 있어온 일이지만 선거에서 패배한 당 지도부는 언제나 물러갔다. 그것이 관례였다. 황 대표의 지도부도 이번 총선에서 지면 그 자리를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야당이 기로에 선 마당에 못 할 일이 무엇이겠는가? 할 수 있는 모든 정치력을 발휘하고 난 뒤라면 정치인으로서 보람이라도 있을 것이다.

야당이 문 정권의 실정과 폭정을 딛고도 4·15 총선에서 승리하지 못한다면 이 나라의 정통 보수와 진정한 진보의 미래는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정도의 실정(失政)이었으면 과거 같으면 어느 정권도 유지되지 못하고 국민의 심판을 받았다. 그럼에도 미래통합당이 총선에서 패배한다면 그 책임은 오로지 미래통합당의 불능과 사명감 상실에 있다. 이 땅의 좌파 정치는 그들의 욕심대로 상당히 오랜 기간 계속될 것이며 야당과 지도부는 대한민국 정치 역사의 오명으로 오랫동안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