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진 마스크가 산업 현장 근로자에게 충분히 공급될 수 있도록 (일반인이) 방진 마스크를 보건용 마스크로 쓰는 것을 자제해 달라." 16일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기자 간담회를 열어 이같이 호소했다. 지난 11일에는 마스크를 사용하는 대규모 사업장들에 "(마스크를) 꼭 필요한 양만 구매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자동차·기계·시멘트·식품 등 마스크 없이 작업이 불가능한 산업군(群)이 줄줄이 공장 가동 중단 위기를 맞고 있어서다.

가장 큰 원인은 중국에서 시작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시중에 '마스크 대란'이 벌어지면서, 일반인들이 품종 불문 마스크를 구입해가는 것이다. 다급해진 공장들이 궁여지책으로 일반 보건용 마스크로 방진(防塵) 마스크를 대체하면서, 보건용 마스크를 써야 할 일반인은 방진 마스크를, 방진 마스크를 써야 할 현장 근로자는 보건용 마스크를 각각 착용하는 상황까지 빚어진다.

충북 제천의 A 석회석 광업소는 매달 20일 산업용 방진 마스크 한 달 치(30장)를 직원 45명 전원에게 지급해왔지만, 이번 달에는 직원 1인당 15장도 못 줄 형편이다. 이 업체 장모 대표는 "매일 마스크 공급 업체에 전화를 걸어 '물량이 없다'는 대답을 듣는 게 일과"라며 "석회석 가루가 많이 날리는 작업 특성상 방진 마스크가 없으면 공장 문을 닫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우리 회사는 물론 충북 단양, 강원 영월에 있는 군소 업체들 수백 곳이 모두 같은 처지"라고 했다. 제천산업단지 입주기업협의회 관계자는 "기업체 모두 마스크를 구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당장 떨어지면 면 마스크라도 배부하겠다는 공장까지 나왔다"고 말했다.

울산 지역 산단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매일 소속 직원 7명이 방진 마스크를 쓰고 작업하는 자동차 부품 업체 다만테크는 16일 기준 방진 마스크가 딱 5개 회사에 남았다. 이 회사 박재현 대표는 "직원들에게 알아서 구해서 착용하라고 하는 상황인데, 사실상 구할 수가 없다"며 "동네 철물점에서 마스크 사다 쓰던 우리 같은 소규모 공장들은 공급처도 못 구하고 말라죽게 생겼다"고 했다. 자동차 엔진부품 하도급 업체인 인근 다른 공장도 "직원 170명 중 방진용 마스크를 써야 하는 직원 30명에게 지급하는 마스크 재고가 1주일 치밖에 안 남아 원청 본사에 호소했지만 그쪽도 구하긴 어렵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울산시 관계자는 "지난달 말 일대 27개 업체를 대상으로 코로나 사태로 인한 애로 사항을 청취한 결과 다른 것보다 마스크 지원 요청이 가장 많았다"고 했다.

사실 방진 마스크 국내 생산량은 오히려 늘었다. 작년에는 매달 1100만개 정도가 생산됐지만 코로나 사태 이후 1300만개가량 생산된다. 그런데도 시중에 물건이 없다. 원인은 시중 마스크 대란으로 인한 수요 폭증이다. 고용노동부 산업안전정책과 관계자는 "일반 마스크를 써도 되는 시민들이 마스크를 구하지 못해 방진용을 쓰게 되면서 벌어진 부족 현상"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직장인 박현주(35)씨는 이달 초 방진용 마스크 10장을 6만원에 샀다. 박씨는 "일반 마스크가 없으니 방법이 없지 않으냐"고 했다.

사실 석면·금속가공 등 작업 현장에서 사용하는 '방진 마스크'는 일반인들이 원하는 '감염병 방어 기능'은 약하다. 산업용 방진 마스크에는 작업 도중 숨을 쉬기 편하도록 배기밸브가 달려 있는데, 이 배기밸브로 바이러스가 침투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 설명이다. 그런데도 일부 유통업자는 일부러 일반인 판매에 나선다. 한 마스크 도매상은 "시중에 팔면 공장에 팔 때보다 돈을 더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일반 마스크가 필요한 산업체도 마스크 부족은 마찬가지다. 정부가 국내 마스크 생산량의 80%를 약국·우체국 등 공적 마스크 판매처에 풀면서 산업 현장으로 가던 마스크 물량이 줄었다. 민간 온라인 쇼핑몰에서 팔리는 나머지 20% 물량의 값이 폭등했지만 그마저도 구하기 어렵다.

자동차 베어링 생산 업체 일진글로벌 근로자들도 이번 주부터 회사에서 마스크 딱 한 장만 지급받는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매일 한 장씩 지급했지만 최근 끊겼다. 이 회사 관계자는 "마스크 구매 전담 직원을 두고 거래처와 온라인 마켓을 샅샅이 뒤지도록 시키고 있지만, 이제 남은 마스크는 단 하루 치"라고 했다. 조미료·라면 수프를 생산하는 공장의 이재훈 차장도 "공장 직원 80명에게 매일 위생 마스크를 지급해야 하는데 구할 방법이 없어 아껴 쓰라고 독려 중"이라고 말했다. 플랜트 건설 근로자 3만여명이 근무 중인 전남 여수시 여수국가산업단지도 산업용 마스크를 구하지 못해 지난 9일 공적 마스크 공급을 요청하는 건의서를 국무총리 앞으로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