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한 코로나의 직격탄을 맞은 대구시가 2000여억원의 긴급 예산을 편성해 영세 자영업자와 중소기업, 저소득층을 지원하는 데 쓰겠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빚은 한 푼도 내지 않고 기존 예산을 줄이거나 용도를 전환해 조달키로 했다. 각종 행사비 등 불요불급한 지출을 구조 조정해 780억원을 마련하고 신청사 건립 기금 등의 기금 예산에서 630억원, 예비비·잉여금에서 480억원을 확보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자체 조달한 재원에다 국민 성금 등을 합친 2000여억원을 코로나 사태로 위기에 몰린 한계기업과 취약층 지원에 투입하기로 했다. 예산 씀씀이의 우선순위를 전면 재조정해 급한 곳에 예산을 집중 투입하는 방식을 채택한 것이다. 이는 국가 전체적으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부는 코로나 피해 지원을 위해 11조7000억원의 추경 예산을 편성했다. 그런데 그중 10조원이 빚이다. 나라 곳간이 탕진돼 거의 전액을 빚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 내용도 상품권 지급 같은 선심성 세금 풀기에 집중돼 있다. 바이러스 우려 때문에 사람들이 마트나 시장에 아예 가질 않는데 상품권을 준다고 지역 경제가 살아나기는 쉽지 않다. 정작 시급한 소상공인·중소기업 지원액은 전체 추경의 20%에 그친다. 그것도 부족하다며 민주당은 6조원 이상 대폭 증액을 요구하고 있으나 재원 조달에 대해선 아무 말 않고 있다. 결국 이것도 모두 빚이 될 것이다. 이미 국가 부채비율은 마지노선으로 여겨지던 40%를 넘어섰다. 돈 쓸 일이 생길 때마다 빚을 낸다면 국가 재정은 감당할 수 없이 부실화될 것이다.

코로나 충격으로 쓰러져가는 취약 부문 지원과 경기 부양 등을 위해 막대한 재정 자금이 필요하다. 나랏빚을 불리지 않으며 이 일을 하려면 대구시처럼 기존 예산을 구조 조정해 '실탄'을 확보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올해 국가 예산은 무려 512조원이다. 상상을 넘는 액수다. 오죽하면 '초수퍼 예산'이란 이름이 붙었겠나. 이 엄청난 돈의 씀씀이만 잘 조정하면 빚을 내지 않고도 코로나 대응 예산을 파격적으로 늘릴 수 있다. 올해 예산은 이미 확정돼 있지만 새로운 사유가 발생했다면 이를 반영한 '경정(更正) 예산'을 새로 짤 수 있다. 정부와 국회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 할 수 있다. 법적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작년 말 국회 심의 절차도 제대로 거치지 않고 부실 통과된 올해 예산안은 곳곳이 문제투성이다. 적자 국채를 60조원이나 찍어 512조원 예산을 짰지만 현금을 살포하는 각종 보조금, 수당, 가짜 일자리 사업 등 총선용 선심 예산이 무려 54조원에 달한다. 각 상임위에서 지역구 의원들이 증액한 예산이 지역 건설 사업 2조3000억원, 농민 소득 보전 8500억원, 이장·통장 수당 1320억원 등으로 곳곳에 매표(買票)용 예산이다.

정부·여당이 지역 민원 사업을 해결해주기 위해 예비 타당성 조사를 면제해준 건설 사업 예산도 수년간 24조원에 달한다. 애초 타당성 조사 통과가 어려워 면제 특혜를 줄 정도라면 경제성 없는 엉터리 사업이라고 봐야 한다. 이런 불요불급한 낭비 예산만 줄여도 수십조원의 코로나 예산을 빚 없이 확보할 수 있다.

효과 없이 세금만 낭비하는 비효율적 예산 항목들을 과감하게 재조정해 절감된 예산을 코로나 위기 대응용으로 전면 개편해야 한다. 대구시는 마른 수건을 쥐어짜듯 빚 없이 예산을 확보했는데 정부가 못 할 이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