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이 닫혀도, 창은 열려 있다.

서울 성북동 예술 공간 옵스큐라는 최근 우한 코로나 사태로 미디어아트 전시 '헐벗은 바벨' 내부 관람을 취소했다. 감염 우려 탓에 입장객을 받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 대신 커다란 통유리 쇼윈도에 전시작을 내놨다. 닫혀 있던 창문 두 개도 전부 텄다. 박우진 큐레이터는 "3D 홀로그램 영상 구현을 위한 고가(高價)의 기기까지 후원받았는데 전시를 그냥 접기엔 너무 아쉬워 관람 방식을 바꿔 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전시장에 들어오는 대신, 밖에서 실내 작품을 들여다보도록 했다. "입장 후 지정된 동선을 따라가는 기존 전시장을 벗어나 다양한 각도의 관람을 연습할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나고자 한다."

서울 성북동 전시 공간 옵스큐라는 입장하지 않고도 관람이 가능하다. 11일까지 쇼윈도와 창문 너머로 장지연 작가의 미디어아트 전시작을 들여다볼 수 있다.

전시작을 전시장 안에서 봐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깨지고 있다. 감염증이 바꿔 놓은 미술계 풍경 중 하나다. 전시의 온라인화(化)가 대표적인 흐름. 조은정 고려대 초빙교수는 이달 초 웹사이트를 개설해 인터넷 전시 '미술관의 평화의 전사들'(The Peaceful Warriors in Museum)을 마련했다. 현재 서울·뉴욕·런던·파리에서 거주 중인 한국 작가 4인(김홍식·박유아·신미경·윤애영)의 작품을 선별해 누구나 무료로 감상케 한 것이다. "외출이 어려워지고 대부분의 갤러리가 문을 닫아건 상황 속에서 전시의 열망을 담은 전시"라며 "고립을 넘어 초연결시대를 확인하며 각기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 작가들을 한 공간(인터넷)에 모았다"고 했다.

전 세계 주요 갤러리 전시 전경을 VR 기술로 촬영해 집에서도 편히 관람할 수 있게 한 이젤(eazel.net) 등의 사이트도 재조명되고 있다. 22곳의 국내 갤러리 실제 전시장 내부가 담겨 있어, 발 대신 손가락으로 삼청동과 청담동 화랑가를 누빌 수 있다. 화면을 클릭하면 간단한 주석까지 제공된다.

인터넷 사이트 이젤의 VR 영상으로 들여다본 서울 안국동 리만머핀 갤러리의 에르빈 부름 개인전.

공공 미술관도 적극적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집에서 만나는 미술관'을 표방하고 유튜브에서 학예사 전시 투어를 진행 중이다. 서울시립미술관 역시 소셜미디어 생중계 기능을 활용한 온라인 미술 체험 증대를 목표로 내세웠다. 코로나 직격탄을 맞은 대구미술관은 침체된 지역 미술 지원을 위해, 선정된 작가 30인의 작품 세계를 조명하는 영상 '나의 예술 세계'를 제작해 4월쯤 유튜브로 방영키로 했다. 미술관 측은 "이번 사태가 '전시장 바깥'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