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한 코로나 확산] 본지 취재팀, 사투 현장 르포

제철 농산물 주문 취소 속출
농가 "감염병이 농사 망칠 줄이야"
전문가 "농산물서 감염될 확률 제로"

식도락을 즐기는 미식가, 제철 특산물에 밝은 요리사라면 ‘청도 한재미나리’를 안다. 경북 청도군 화악산에서 흘러내린 자연수와 관정을 뚫어서 끌어올린 암반수로 재배해 식감이 연하고 다듬지 않고 먹어도 될 정도로 깨끗하다고 이름난 미나리다. ‘한재 미나리’가 브랜드화(化)에 성공하면서 청도는 경북 최대 미나리 산지(産地)가 됐다.

9일 오후 대구 동구의 미나리 농장 이화농원의 텅빈 시식장에서 농장주인 서병규씨가 미나리 바구니를 들고 홀로 서 있다. 서씨는 "매년 봄이 되면 제철 미나리를 맛보려는 사람들로 시식장이 가득 찼는데 올해는 찾는 이가 한 명도 없다"고 했다.

45만6700여평(151만㎡)의 넓은 들에서 380여 농가가 미나리 농사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지금이 딱 미나리철이다. 2월에서 3월까지가 미나리 수확철이다. 공교롭게도 우한 코로나가 대구·경북을 강타한 시기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미나리농가엔 날벼락이다. "대구·경북 농작물은 왠지 찜찜하다"며 산지를 찾는 사람도, 택배 주문도, 타지 거래처 주문도 대부분 다 끊겼기 때문이다.

매년 이맘때면 평일과 휴일을 가리지 않고 청도의 미나리 재배지 근처 도로는 자동차와 관광버스들로 꽉꽉 찼다. 미나리 재배 농장마다 비닐하우스 한 동을 간이 식당처럼 꾸며놓고 삼겹살에다 즉석에서 따온 미나리를 내놓는데, 그 맛을 찾아서 전국 각지의 미식가들이 모여들었다.

9일 오후 찾아간 청도군 각남면 음지리 한재미나리마을. 130여 농가가 미나리농사를 짓고, 식당 30여곳이 삼겹살과 곁들인 미나리로 전국적으로 이름난 곳이다. 이날 마을 풍경은 을씨년스러웠다. 마을 입구에서 골짜기 끝까지 10km가량 들어가는 동안 지나는 차량 한 대 보이지 않았다. 600평 면적에 미나리농사를 지어 직판장에서 판매하고 있는 정경수(74)씨는 "TV에 대남병원이 나오고부터 발길이 딱 끊겼다"며 "지난 주말 한 팀도 찾아오지 않았다"고 했다. 비닐하우스 안에는 수확하지 않은 미나리가 가득했다. 정씨는 "미나리가 누워버리면 모두 베어서 버릴 수밖에 없다"면서 "이제 끝물인데 헐값이라도 팔 수 있으면 다 팔아버릴 생각"이라고 했다.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식당 한 곳에 들어갔더니 이순임(64)씨는 "혹시나 (손님이 올까) 싶어 숯을 피우고 있다"고 했다. "가끔 손님이 있냐"고 물으니 고개를 저으며 "하루종일 앉아서 일당 받아가려니 눈치 보여 죽겠다"고 했다.

9일 오후 대구 동구의 미나리 농장 이화농원의 텅빈 시식장에서 농장주인 서병규씨가 팔지 못해 버려야 할 미나리밭을 살펴보고 있다.

대구 팔공산 자락 일대 70여 미나리 농가들 사정도 비슷했다. 이날 오후 대구 동구 팔공산 초입(初入)에 있는 미나리 농장 ‘이화농원’. 미나리를 수확하는 비닐하우스 네 동 안에는 아직 수확하지 못한 미나리가 빽빽했다. 이곳은 주로 각지에서 주문을 받아 택배로 미나리를 판매하는데, 올해는 ‘대구산(産)’이라는 딱지가 붙자 주문량이 확 줄었다. 600여평 밭에서 매해 4t가량을 수확하는데, 올해는 아직 1t밖에 수확하지 못했다고 한다. 농장주 서병교(67)씨는 "올해 날씨가 너무 좋아 풍년이라고 기대가 컸는데 전염병 때문에 농사를 망치는 경우는 처음"이라며 "4월이면 수확 시기가 지나 피땀 흘려 재배한 미나리를 모두 폐기 처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나마 택배 영업을 주로 하는 이화농원 사정은 나은 편이었다. 방문 손님들 위주로 판매해온 농장들 사정은 참담했다. 팔공산 A영농조합은 올해 미나리 수확을 아예 포기했다. 하우스 안에는 미나리가 그대로 방치돼 있다고 한다. 전국 각지에서 들어오던 주문·방문 판매 수요가 거의 절멸(絶滅)해, 수확에 필요한 인부 인건비를 댈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영농조합 관계자는 "4월만 돼도 상품성이 없어지기 때문에 4~5월까지 기다렸다가 갈아엎을 생각"이라며 "전국에서 대구 발송 농작물 택배는 안 받겠다는데 어쩌겠느냐"고 했다.

감염병 전문가 "농산물 통해 바이러스 감염될 가능성 없다"

전문가들은 바이러스 감염을 우려해 대구·경북 농산물이나 제품을 기피하는 ‘대구·경북 포비아(공포증)’는 완전히 비과학적인 오해라고 말한다. 이재갑 한림대 감염내과 교수는 "미나리와 같은 농작물, 식물에 바이러스가 묻어서 그것을 먹거나 소비하는 사람을 감염시킬 가능성은 사실상 제로(0)"라고 단언했다. 미나리를 재배하고 포장하는 과정에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제품에 묻을 가능성도 낮겠지만, 설사 묻었다고 해도 유통에 걸리는 시간 동안 생존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보통 바이러스는 매끈한 표면에서 3~4시간 생존하기도 쉽지 않다"면서 "습기가 있는 식물 표면에선 금방 죽는다"고 말했다.

〈대구 특별취재팀〉
팀장=조중식 부국장 겸 사회부장
박원수·최재훈·오종찬·권광순·표태준·류재민·이승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