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관리본부 및 감염내과 교수 등 방역 전문가들은 시종일관 '일반인은 마스크를 굳이 쓸 필요가 없다. 의료기관 방문 시에는 일회용 보건용 마스크를 쓰라'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지난 40일 동안 방역 당국이 아닌 정부 관료와 정치권이 오락가락 대응을 하면서 국내 마스크 대란을 낳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는 지난 1월 29일 질병관리본부 지침과는 달리 일반인에게도 최고 등급 보건용 마스크를 쓰라고 발표했다. 정부발(發) 첫 마스크 발언으로, 이 무렵부터 마스크 품귀 현상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이후 식약처와 기획재정부는 '국내 마스크 생산량이 충분하다'고 하더니, 사태가 심각해지자 뒤늦게 수출 제한을 하고 사실상의 마스크 배급제를 9일부터 실시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국내 마스크 상당수가 중국으로 수출되기도 했다. 폭발적인 마스크 수요 증가 때문에 마스크 공급량 부족이 이어지는 상황이 40일째 계속되고 있다.

"KF94 쓰라"고 했다가 5주 만에 "면 마스크 쓰라"

방역 당국인 질병관리본부는 1월 20일 첫 국내 확진자가 나온 이후 "건강한 일반인은 일상생활에서는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아도 되고, 의료기관에 가거나 호흡기 증상이 있을 때 KF80 등급 이상 보건용 마스크를 착용하라"고 안내했다.

그러나 1월 29일 식약처는 "감염 예방을 위해서 'KF94' 'KF99' 등급 마스크를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KF94나 KF99는 오염 물질을 94%나 99% 걸러주는 보건용 마스크다. 식약처가 이같이 차단율이 높은 마스크 사용을 권고하면서 보건용 마스크 수요가 급증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박원순 서울시장 등은 지난달 5일 성동구보건소 현장 방문 당시 보건용 마스크를 쓰고 나타났다. 이후 국내 마스크 품귀 현상이 심각해지자 정부와 정치인은 '굳이 보건용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되고, 마스크 재활용도 가능하다'고 돌변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2일 "마스크 1장으로 3일 써도 된다"고까지 말했다. 뒤이어 이의경 식약처장은 다음 날 "(방한용) 면 마스크를 써도 된다"고 했다. 질병관리본부와 세계보건기구(WHO)는 면 마스크 사용은 권하지 않고, 보건용 마스크는 재사용하지 말라고 하고 있다. 한 감염내과 교수는 "처음에는 굳이 일반인은 쓸 필요도 없는 보건용 마스크를 쓰라면서 당국 관계자가 모두 마스크를 쓰고 나타났다가 이제 와서 쓰지 말라고 오락가락하고 있다"며 "이런 갈지(之)자 정책을 펼치다 보니 코로나 공포에 빠진 국민이 일단 마스크부터 챙기겠다고 나서는 것"이라고 했다.

마스크 '배급제'까지 왔지만 해결 요원

마스크에 대한 국민 수요가 폭발하면서, 지난달 25일 문재인 대통령의 "마스크 수요를 감당하기 충분한 생산 능력이 있다"는 말은 '희망고문'이 됐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지난 3일 "경제활동인구 2800만명이 하루에 한 장씩 마스크를 쓴다고 생각하면 이 수요를 충족시키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이라며 대통령 말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코미디 상황이 벌어졌다.

식약처 관계자는 국내 확진자가 27명이었던 지난달 10일, 본지 통화에서 "국내 보건용 마스크는 하루 생산량이 900만~1000만장에 달하고, 재고 2500만장 수준이 유지돼 공급에 문제가 없다"고 했다. 이때 이미 시중에서는 보건용 마스크 품귀 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국내 생산량의 상당 부분이 중국으로 넘어간 탓이었다. 인터넷 쇼핑몰에서는 정가가 1400원이던 마스크가 4000원이 넘을 정도로 비싸게 팔렸다.

결국 정부는 지난달 11일 국무회의에서 '보건용 마스크 및 손 소독제 긴급 수급 조정조치안'을 의결했다. 이를 통해 지난달 25일 국내 마스크 생산량의 50%를 정부가 확보해 유통하기로 했다. 여전히 마스크가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기획재정부는 9일부터는 사실상 '마스크 배급제'를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마스크 부족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 40일간의 마스크 대란은 기본적으로 국내 생산량이 부족했다는 걸 보여주는데 정부는 생산량 대책 대신에 한정된 마스크를 어떻게 분배할지만 신경 쓰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