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형환 한양대 특임교수 정치학 박사

21대 총선이 36일 앞으로 다가왔다. 후보자들 입장에서 보면 하루하루가 피 말리는 시간일 것이다. 여기서 물어보고 싶다. "왜 국회의원이 되려고 하십니까?" 매몰차게 분류해 본다면 대략 이런 이유일 것이다. 첫째, 배운 것이 이것밖에 없어서. 젊어서부터 정치판에 뛰어들었거나 운동권 출신들에게 해당하는 사례이다. 둘째, 오랫동안 해 오던 일이 지겨워서. 주로 교수나 변호사 같은 전문직 종사자들에게 해당하지만 대부분 후보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이유이다. 셋째, 가진 것을 지키려고. 재산가들의 경우이다. 넷째, 쉽게 신분 상승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주위에 보니까 별것 아니던 사람이 선거에 당선되고 신분이 달라진 것을 보고 뛰어든 경우이다. 다섯째,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려고. 누구나 입으로 말하는 매우 교과서적인 이유이다.

그러면 기존 국회의원들이 선거에 계속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이 생활에 익숙해서. 국회의원이 누리는 여러 가지를 버릴 수가 없는 경우이다. 둘째, 다른 일을 할 수가 없어서. 한번 국회의원이 되면 다른 직업을 잡기가 어려워진다. 호환성이 부족한 직업이다. 셋째, 더 큰 자리를 위해서. 재선만 되면 시·도지사, 3선이면 대통령 자리를 꿈꾼다는 사례에 해당한다. 넷째, 공동체를 위해 시작한 일을 계속하고 마무리하기 위해서. 교과서적인 명분이다.

물론 이 중 한 가지 이유만으로 출마하지는 않을 것이다. 여러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대의민주주의에서 선출이란 그 집단을 가장 잘 이끌어갈 수 있는 대표를 뽑는 과정이다. 집단을 잘 이끌어간다는 것은 정치를 잘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정치란 무엇인가? 데이비드 이스턴(D. Eastern)의 주장에 따르면 '사회적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다. 선출된 대표는 '공동체의 지속을 위해 한정된 자원과 가치를 가장 효율적으로 배분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효율적인 배분을 하려면 대표는 가장 현명하고 사익보다는 공익만을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권력의지가 강한 사람이, 많이 알려졌다는 이유만으로 선출될 가능성이 크다. 이것이 현대 대의민주주의 위기의 본질 가운데 하나다.

정치인의 덕목으로 막스 베버(M. Weber)는 열정, 균형 감각, 책임감을 들었다. 정치인에게서 우리는 열정을 자주 본다. 그러나 그 열정은 대부분 권력의지와 공명심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 막스 베버 식으로 말하면 '비생산적 흥분상태'이다. 여기에 균형 감각과 책임감이 없는 사람들이 국회의원이 된다면 결국 공동체에 대한 고민 없이 임기를 마치게 된다. 아니 유일한 고민은 '다시 선출'이다.

국회의원은 선출직 공직이다. 선출은 형용사이고 본질은 공직이다. 그러나 많은 후보는 공직에 대한 객관적 성찰보다는 선출에 대한 주관적 확신으로 정치판에 뛰어든다. 각 정당도 공직을 담당할 능력과는 상관없이 얼굴 알려진 사람부터 내세운다. 정치의 본질을 전혀 모르고 사명감도 없는 인물을 출마시켜 자신은 물론 국회와 나라마저 망쳐놓기 일쑤다.

국회의원은 지역 대표성과 국민 대표성을 동시에 갖는다. 핵심은 국민 대표성이다. 많은 후보는 국민 대표성에 대한 인식이 없다. 공약도 시·군·구 의원들과 차이가 없다. 지역 유권자를 겨냥한 것으로 이해는 가지만 기본적으로 국가적 담론을 고민하지 않거나 고민할 능력이 없는 경우가 많다. 골목 국회의원들의 양산이다.

국회의원은 입법부 구성원과 정당 구성원이라는 이중 역할을 가지고 있다. 물론 중요한 것은 입법부 구성원 역할이다. 그럼에도 능력이 없으면, 특히 균형 감각이 없으면 당론에만 충실히 따르는 정당 구성원 역할에 매몰된다. 정치 양극화, 전투 국회의 중요한 원인이다. 대의민주주의 체제에서 선거를 자주 하는 것은 자질 없는 대표를 걸러내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결과가 매번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균형 감각과 책임감보다는 권력의지와 공명심의 열정으로 가득 찬 인물들이 무대의 중심에 선다.

'선출된 자는 선출한 자의 수준을 대변한다.' 유권자들에겐 매우 섭섭한 정치학의 명제이다. 유권자만 탓할 바는 아니다. 현대 미디어 정치에서 정당과 후보가 유권자를 속일 수단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유권자가 더욱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그리고 후보들에게 묻자. "출마의 진짜 이유는 무엇입니까? 자신의 능력이 국민의 대표직을 수행할 수 있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제발 내려오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