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5부제 첫날 서울 시내 약국 21곳 가 보니
물량 확보 못 한 약국이 대부분…시민들 "정부에 또 속았다"
"언제 들어올지 몰라요"…"일주일 또 기다리란 말이냐"

"마스크 5부제 시행하면 뭐합니까? 덜덜 떨면서 몇 시간 줄 서도 약국에 마스크가 없는데."

‘마스크 5부제’ 시행 첫날인 9일 오전 9시 서울 영등포구 한 대형약국. 정문 잠금장치가 풀리자 오픈 2시간 전인 7시부터 대기하던 손님 20여 명이 매장 안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그러나 마스크 매대(賣臺)는 텅 비어있었다.

"마스크는 도대체 어디 있는 거냐"는 손님들 호통이 이어졌다. 약사는 "저희도 언제 들어올지 모른다. 죄송하다"고 했다. "기다린 시간이 있으니 번호표를 달라"거나 "마스크 들어올 때까지 약국 안에서 기다리겠다"는 손님도 있었다. 이영선(69)씨는 "5부제로 마스크 구매일도 쪼개놨으면서 오늘도 물량이 없다는 이유로 허탕 치게 됐다"며 "정부가 ‘신분증 들고 약국 가면 된다’는 식으로 말하더니, 마스크 없이 또 일주일 기다릴 생각에 짜증이 난다"고 했다.

‘마스크 5부제’ 시행 첫날인 9일 오전 8시30분 시민 40여 명이 마스크를 사기 위해 줄을 서 있다. 당시 이 약국에는 공적마스크가 입고되지 않은 상태였다.

정부는 이날부터 출생연도 끝자리에 따라 정해진 날짜에 마스크를 최대 2장씩 구매할 수 있는 이른바 ‘마스크 5부제’를 시행하기로 했다. 지난달 27일 ‘긴급 수급 조정 조치'로 1인당 마스크 구매 개수를 제한한 데 이어, 정부가 제공하는 ‘공적 마스크’ 구매를 최대한 분산시킨다는 취지다. 월요일인 이날은 끝자리가 1 또는 6인 사람만 마스크를 살 수 있다.

하지만 시행 첫날 돌아본 서울 시내 약국 대부분은 아직 마스크 물량을 확보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은 이날 오전 7시부터 정오까지 공적 마스크 판매처 21곳을 둘러봤다. 구매가 가능한 곳은 한 곳에 불과했다.

◇5부제는 시작, 마스크 들어오는 시간은 "모른다"
오전 9시 강남구 약국 앞에는 시민 40명이 오전 7시부터 30m가량 줄 서 있었다. 약사가 문밖으로 나와 "아직 마스크 물량이 안 들어와 판매할 수 있는 마스크가 하나도 없다. 나중에 다시 와달라"고 안내했다. 신분증과 주민등록등본을 들고 온 시민들은 쉽게 발걸음을 돌리지 못했다.

직장인 양진태(49)씨는 "오전 반차까지 쓰고 약국에 왔는데 아직 들어온 마스크가 없다고 하니 황당하고 화가 난다"며 "5부제 시작할 거면 정부가 약국에 비치부터 미리 해둬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다. 대학생 정재영(24)씨는 "정부가 앞으로는 줄 안 서도 마스크 구할 수 있다더니 약국 서너 곳을 둘러봐도 마스크를 살 수 있는 곳은 없었다"고 했다.

일부 시민들은 "마스크가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겠다"며 약국 앞에서 진을 쳤다. 약국 측도 난감해했다. 종로5가 약국 10곳 중 9곳은 ‘오늘 공적마스크 판매 마감됐습니다’라는 안내문을 입구에 미리 붙여놓았다. "마스크가 언제 들어올지도 모르는데 ‘마스크 없냐’며 물어보는 시민들이 많아 오늘치 마스크를 받을 때까지 안내문을 떼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9일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의 한 약국에 공적 마스크가 입고됐다는 소식을 듣고 시민 100여 명이 몰려들었다. 이날 이 약국에 입고된 마스크는 150장, 75명분에 불과했다.

오전 10시쯤 종로구 한 약국에 마스크가 입고됐다. 근처 약국을 돌아다니던 시민들이 마스크 입고 소식을 듣고 몰리자 순식간에 100여 명이 약국을 둘러쌌다. 입고 물량은 150장이었다. 한 사람당 2장씩 총 75명이 살 수 있는 양이다. 마스크를 사지 못한 심주석(64)씨는 "이번에도 마스크를 못 구하면 일주일을 기다려야 한다. 아직 마스크 배달이 안 된 약국에 진을 치고 기다릴 것"이라며 발걸음을 옮겼다.

◇점심 포기하고 약국 들른 직장인도 헛걸음
강남·광화문 등 직장가 일대 약국은 점심시간 직장인들로 붐볐다. 식사를 포기하고 약국을 찾은 것이다. 하지만 이미 입고된 물량은 완판됐고, 점심시간이 끝날 때까지 마스크가 들어올 보장이 없어 발길을 돌리는 경우가 많았다.

직장인 최준혁(29)씨는 "종각역 인근 약국 4곳을 돌아다녀 봤지만 모두 물량이 없어 허탕 쳤다"며 "더 먼 약국까지 갈 수가 없어 이번 주 구매는 포기했다"고 말했다. 직장인 서주영(29)씨는 "약국에 가니 ‘오후 1시 지나서 다시 오라’는 답을 들었다"며 "근무시간 때문에 이동에 제약이 있는 회사원들은 공적 마스크를 사지 말란 소리 아니냐"고 했다.

9일 낮 1시 강남구의 한 약국 앞에 마스크를 사기 위해 시민들이 몰리고 있다. 하지만 이 약국도 아직 마스크 물량이 입고되지 않아 모두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약사 A씨는 “이날 오전 ‘마스크 있냐'며 찾아온 시민만 100여명"이라며 “당장 마스크가 언제 얼마나 입고될지는 약국도 알 방법이 없다"고 했다.

마스크 5부제가 마스크 구매를 더 어렵게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직장인 손중근(64)씨는 "약국이 아니라 주민 명단을 가진 주민센터에서 마스크를 판매해야 우리 같은 회사원도 공적 마스크를 구경할 수 있을 거 같다"고 했다. 영등포구 약사 남모씨는 "정부에서 마스크 물량을 충분히 확보하지 않은 상황에서 무작정 구매 방식만 바꿔 시민들이 더 혼란스러워졌다"며 "현재 전국의 모든 약국이 마스크 판매점으로 전락해버려 약국 본연의 업무를 못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