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 있는 조선일보를 두 번 직접 방문한 경험이 있다.

맨 처음 조선일보를 찾은 것은 1995년 농구대잔치 우승한 다음 날이었다. 동료 선수들과 우승 직후 뒤풀이를 좀 심하게 했다. 당시엔 우승하면 감독과 선수들이 언론사를 돌며 인사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 전날 새벽까지 뒤풀이를 심하게 하는 바람에 나는 빠지겠다고 했다. 곤히 늦잠 자는데 전화가 왔다. 팀 관계자가 인터뷰해야 하니 시내로 와야 한다고 했다. '나 길 모른다, 운전도 못한다. 나를 데리러 오면 가겠다'고 떼를 부렸다. 설마 했는데 조선일보 기자가 차를 끌고 집 근처까지 찾아왔다. 안 나갈 도리가 없었다. 술 냄새 풍기며 인터뷰했다.

허재 전 농구대표팀 감독은 프로농구 선수로 맹활약하는 두 아들의 기사를 읽는 게 요즘 가장 큰 기쁨이다. 사진은 2016년 9월 허 감독(가운데)이 진천선수촌에서 큰아들 허웅(왼쪽)과 둘째 허훈을 안고 활짝 웃는 모습.

두 번째는 2000년이었다. 아는 동생이 교통사고를 내는 바람에 도와주려고 경찰서에 갔는데, 마침 조선일보 여기자가 그 현장에 있었다. 내가 음주 사고를 친 걸로 생각했는지 자꾸 꼬치꼬치 캐물었다. 순간적으로 흥분해 육두문자가 튀어나왔다. 며칠 후 조선일보를 찾아가 그 여기자를 만나서 오해를 풀었다. 그런데 집에 가려는 나를 당시 스포츠부 기자들이 '온 김에 사진이나 한 장 찍고 가라'고 붙잡았다. 그 사진 가끔 나온다. 조선일보 기자들, 정말 끈질겼다.

선수 시절엔 솔직히 스포츠 전문지만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말이지~. 내 이름, 내 사진이 1면에 크게 나오기 때문이지~. 하하. 작고하신 아버지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내가 등장하는 모든 신문 기사는 다 읽으셨다. 가끔 조선일보 사회면을 보시던 아버지 안색이 붉으락푸르락할 때 뜨끔했다. 난 술 때문에 스포츠면뿐 아니라 사회면에도 자주 등장했다. 아마 운동선수 중 나처럼 사회면에 이름 많이 나온 사람 있을까.

아버지가 보시던 조선일보를 지금은 내가 본다. 세상 돌아가는 모습이 한눈에 보인다. 우리나라 최고 역사를 지닌 신문답게 가장 믿음이 간다. 스포츠면은 나보다 두 아들 기사 읽는 재미로 본다. 이제야 돌아가신 아버지 심정을 알 것 같다. 조선일보가 웅이와 훈이 두 아들 어렸을 때부터 최근까지 나와 함께 삼부자 얘기를 쓴 기사가 몇 건 있다. 요즘 예능 출연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시간 날 때마다 휴대폰에 저장한 그 기사를 보면서 피로를 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