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일은 영웅주의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단지 성실성의 문제입니다.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입니다.”

봉쇄된 도시에서 소시민들이 전염병에 맞서 싸우는 소설 '페스트'의 국내 판매량이 급증하고 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알베르 카뮈의 1947년 작품으로, 우한 코로나가 확산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2월 '페스트' 판매량은 전년 대비 463% 증가했다.

'페스트'를 찾는 독자가 폭발적으로 늘자 민음사는 급히 증쇄를 결정했다. 허주미 민음사 차장은 "지난달 판매량이 평소보다 3배 가까이 늘었다"고 했다. 오는 10일에는 tvN '책 읽어 드립니다'에서도 소설 '페스트'를 다룰 예정이라 판매는 계속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시중에 팔리는 '페스트'는 25종 가까이 된다. 민음사·문학동네 번역본에 이어 세계 명작 시리즈로 나온 초등학생용 '페스트'까지 판매량이 늘고 있다. 진영균 교보문고 브랜드관리팀 과장은 "20~40대가 두루 보고 있으며 40~50대 비중(46%)에는 논술 및 자녀 교육용 구매도 꽤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페스트'의 재조명은 전 세계적인 추세다. 일본 서점가에서도 재고가 동나면서 2일 출판사 신초샤가 1만 권 증쇄를 결정했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이탈리아에서도 소설 '페스트' 판매량이 180% 늘고 베스트셀러 10위권 안에 진입했으며 프랑스에서도 전년 대비 판매량이 4배 이상 급등했다.

카뮈는 2차 세계대전 중에 ‘페스트’를 구상했다. 소설 속에서 정부는 우왕좌왕하고 종교계는 전염병이 신의 형벌이라 주장하며, 배급품을 빼돌려 비싸게 파는 암거래가 판친다. 70년 전 작품이지만 지금의 현실을 훤히 내다본 듯하다. ‘페스트’를 번역한 김화영 고려대 명예교수는 “시대를 초월해 질병이나 전쟁을 겪으면 인간은 어쩔 수 없이 한배를 타게 되고 ‘우리’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면서 “소설 ‘페스트’는 적에게 증오를 배워서는 안 되며 우리가 함께 견디고 싸워야 한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