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윗사람이라는 분은 어깨를 주무르고 허리춤을 쓰다듬었습니다"
"아침에 피곤해 보이면 '어제 남자친구랑 뭐했냐'고 물었습니다"
"'회사 왜 다니냐. 시집이나 가서 골프나 치러 다녀라'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국내 체육단체 기관 종사자 10명 중 1명은 최근 1년 이내 직장 내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는 연구조사 결과가 나왔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는 5일 대한체육회·대한장애인체육회 등 체육단체에서 일하는 사무직 137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체육단체 및 기관종사자 성폭력 등 실태 조사’ 보고서를 발표했다. 조사 결과 1378명 중 470명(34.1%)은 직장 내 괴롭힘 피해, 138명(10%)은 성폭력 피해를 당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일러스트=정다운

성희롱·성폭력 피해 유형으로는 △대면이나 전화통화로 하는 불쾌한 성적 언행(6.2%) △회식자리에서 옆에 앉혀 술 따르도록 강요(4.5%) △가슴·엉덩이·다리 등 특정 신체 부위를 보는 행위(3.2%) 순으로 높았다. 또 성관계를 전제로 승진이나 보직임명, 임금인상 등을 제안하거나 강제로 입을 맞추고 포옹하는 등 직접적인 성접촉 행위도 15건이나 됐다.

성희롱·성폭력 피해 비율은 여성이 21.1%으로, 남성(2.9%)보다 압도적으로 높았다. 고용 형태별로는 비정규직 673명 중 10.7%가, 정규직 705명 중 9.4%가 성적 괴롭힘을 당했다고 응답했다.

체육 단체 직원들의 성폭력 비율은 공공기관과 민간업체 보다 높았다. 2018년 여성가족부가 공공기관, 민간기업을 대상으로 한 ‘양성평등기본법’ 정례조사 결과, 성폭력 피해를 당한 응답자는 8.1%이었다. 체육 단체 종사자(10%)보다 1.9%P 적은 수준이다.

성희롱·성추행의 주요 가해자는 기관 임원인 경우가 다수였다. 인권위는 "상근직 임원 20%, 비상근 임원 8%가 괴롭힘 가해자로 지목돼 비율이 높다"며 "조직 문화 개선이 시급하다"고 판단했다.

직장 내 괴롭힘도 만연했다. 조사 응답자 3명 중 1명이 최근 1년 이내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유형별로 살펴보면 회식 참여 강요가 16.7%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개인사 뒷담화나 소문(16.2%) △욕설과 위협적 언행(13.4%) △음주나 흡연 강요(13.1%) △훈련, 승진, 보상, 일상적 대우에서의 차별(12.8%) △정당한 사유 없는 부서 이동이나 퇴사 강요(4.5%)가 그 뒤를 이었다.

지난해 7월 시행된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의 법적용은 미미한 것으로 조사됐다. 응답자의 86%는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피해자가 내·외부 기관에 신고하는 등 조치를 취하는 비율은 10.2%에 그쳤다.

인권위는 "선·후배 간의 공고한 위계 관계, 상명하복 문화, 경력에 대한 불이익 등 체육계의 문화때문에 성관련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은 것 같다"며 "체육 관련 단체 직원들이 여전히 성폭력 피해나 괴롭힘에 노출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고, 전문가 자문과 관계기관 협의를 거쳐, 가이드라인 등 개선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