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바르셀로나를 상징하는 건축물 성(聖)가족성당(Sagrada Familia)은 인류가 만든 가장 위대한 건축물로 꼽힌다. 천재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1852~1926년)의 작품인 이 건물은 두 가지로 유명하다. 화려하고 웅장한 건축적 아름다움, 그리고 첫 삽을 뜬 지 100년을 훌쩍 넘기고도 여전히 '진행 중'인 기나긴 시공 기간이다. 만년 미완(未完)이리라 여겨졌던 성가족성당이 완결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인류가 그동안 이룬 IT(정보기술)와 재료·토목공학을 발판 삼아, 바르셀로나는 가우디 100주기인 2026년까지 성당을 완성하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베트남 출신 한국 귀화인인 나는 여행 가이드로 일하며 관광학을 전공하고 있다. 위대한 건축물이 한 도시를 얼마나 매력적으로 바꾸는지에 관심을 가져왔다. 바르셀로나가 이 유명한 성당을 비로소 완성한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 나는 확인하고 싶었다. 첫 삽을 뜬 지 100년 넘도록 60%밖에 완성되지 않았던 건물을, 어떻게 10년 안에 만들겠다는 것일까.

◇부서진 모형, 3D 프린터가 살린다

"가우디를 혹시라도 만나면 묻고 싶습니다. 혹시 우리가 제대로 하고 있습니까?" 호주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싱가포르 마리나베이 리조트, 인천 영종대교 등 세계적 현대 건축물을 만든 영국의 건축 회사 아룹(ARUP)의 트리스트램 카프래 부회장은 지난달 "최첨단 기술을 총동원해 과거보다 10배 빠르게 공사를 진행하는 중"이라고 했다. 성당 운영·건설을 주관하는 성가족성당 재단은 2015년 이전까지 하지 않았던 파격에 나섰다. 스페인이 아닌 다른 나라, 즉 영국의 건축사에 손을 내민 것이다.

가우디는 31세에 건물을 설계할 때 200년 정도는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인류가 이 천재의 생각보다 빨리 진보했을까. 카프래 부회장의 설명을 듣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기계를 더 똑똑하게 만들어 부려 먹을 방법을 개발했고, 자연석(石) 같은 천연의 재료를 원하는 대로 길들이는 기술도 알아냈다. 그 지혜와 지식을 성가족성당에 총동원하고 있다.

우선 3D 프린터가 가우디 시절 만들던 석고 모형을 대체했다. 가우디는 조형물을 여러 각도에서 보려고 축소판 모형을 많이 만들었다. 또 동물이나 사람 모양 조각을 만들기 위해 동물의 사체(死體), 심지어 살아 있는 인간에게 석고를 발라 본을 뜨기도 했다. 이제는 3D 프린터가 이 작업을 대신한다. 길게는 수개월씩 걸리던 모형 제작 과정이 몇 시간으로 단축됐다.

가우디가 성당을 설계하며 만든 모형을 복원하는 것도 3D 프린터의 몫이다. 가우디는 많은 모형을 만들었지만 스페인내전을 거치며 산산이 조각난 것이 많다. 성가족성당 재단의 페르난도 비야(Villa) 건축기술 디렉터는 말했다. "가우디가 만든 모형은 1만개 정도 조각으로 부서진 상태입니다. 이걸 일일이 찾아 손으로 맞추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지요. 하지만 이 조각들을 스캔하고서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모양을 복원하고, 그 모양을 3D 프린터로 찍어내면 마법처럼 가우디의 모형이 부활하는 것이지요."

◇가우디는 꿈도 못 꾼 가상현실

지난달 성당에 들어섰을 때 가장 놀라웠던 것은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여러 색상으로 성당 안을 비추는 햇빛의 모습이었다. '자연은 나의 스승이다'라던 가우디의 정신과 영감은 자연을 만나 완성되는 듯했다. 가우디라는 천재가 어떻게 빛의 움직임까지 계산에 넣었을까.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현대의 전문가들은 가우디는 꿈도 못 꿨을 첨단 기술인 가상현실을 통해 빛과 성당의 조화를 수시로 확인하고 있다고 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가우디의 설계에 따르면 총 18개인 첨탑엔 삼각형 창문이 수없이 많이 뚫려 있다. 이 창문으로 흘러드는 빛이 철마다 어떻게 바뀌는지를 확인하려면 과거엔 1년을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가상현실 프로그램을 사용하면 그동안 축적된 일출·일몰 시간과 태양의 위치 등을 토대로 그림자가 어떤 모양으로 움직이는지 미리 실험하는 것이 가능하다.

재료·토목공학 기술도 동원됐다. 지금까지 첨탑이 8개밖에 완성되지 못했던 이유 중 하나는 첨탑이 튼튼해지면 무게까지 불어나 성당 본체가 이를 견디지 못한다는 딜레마 때문이었다. 아룹은 돌에 가는 철근을 삽입해 장력을 주어 돌의 밀도를 높이는 방식을 통해 가벼우면서도 단단한 돌을 만들어 성당 건축에 투입하고 있다. 카프래 부회장은 "지하실 위에 바로 세워진 마리아 첨탑의 경우엔 원래 계획대로 세우면 너무 무거워 지하실이 붕괴할 위험이 있었다. 돌 무게를 줄이는 첨단 공법으로 이 문제를 풀었다"고 했다. 벽돌처럼 돌을 쌓아 붙이는 건축법 대신 레고 블록 같은 방식으로 돌을 조립하는 기술도 도입했다. 1㎜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정교한 컴퓨터 재단 기술 덕분에 가능해진 방식이다. 비야 디렉터는 "가우디가 이런 기술을 알았다면 공사 기간을 훨씬 짧게 예측했을지 모른다"며 웃었다.

◇어떤 기술은 여전히 '무리'…미래 세대의 몫

카프래 부회장은 혹시라도 가우디를 만나면 무엇을 물어보고 싶으냐고 하자 이렇게 답했다. "가우디가 그린 어떤 도면을 보면 물방울 모양의 돌이 공중에 떠 있는 듯 보이는 설계가 있습니다. 이 부분을 작업하고 있는데 너무 어려워요. 묻고 싶습니다. '무거운 돌이 어떻게 벽에 대롱대롱 매달릴 수가 있소. 이건 우리도 무리요!'"

성가족성당의 건설엔 지난해 400만명을 넘어선 방문객들의 입장료가 주요 재원으로 쓰인다. 100년 전 세상을 뜬 가우디의 꿈을 후세 인류가 힘을 모아 이뤄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프래 부회장의 말처럼, 가우디의 구상 안엔 여전히 이루기 어려운 디자인도 포함돼 있다. 어쩌면 앞으로 또다시 100년이 흐르고 나서 한 발짝 더 앞으로 나간 인간이 가우디의 꿈을 계속 이뤄주지 않을까. 유한한 인간이니까 무한한 꿈을 꾸어야 한다고, 이 위대한 건축물은 이야기하고 있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100여년째 지어지고 있는 성(聖) 가족성당(Sagrada Familia). 첨단 기술의 도움을 받아 건축에 속도를 내고 있는 이 성당은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 사후 100주년인 2026년에 완공될 예정이다.
정아름(오른쪽) 탐험대원이 스페인 바르셀로나 성가족성당 완성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세계적 건축회사 아룹의 트리스트램 카프래 부회장과 영국 런던 본사에서 지난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