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한 코로나 방역 당국의 '입' 역할을 해온 정은경(55) 질병관리본부장이 2일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정 본부장은 지난 1월 국내 첫 확진 환자 발생 이후 39일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이어오던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 대국민 브리핑 자리를 지켜오다 지난달 28일 처음으로 결석했다. 그가 얼굴을 비치지 않자 브리핑에서는 "본부장의 건강에 이상이 생긴 것이냐"는 질문이 이어졌다.

2일 오후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이 충북 오송 질병관리본부 청사 통로에서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관련 내용을 기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사흘 만에 다시 나타난 정 본부장은 이날 "건강상 문제없고, 잠도 충분히 자고 있다"면서 "다만 직원들이 돌아가면서 비상근무를 해야 하는데 전문 분야다 보니 대체 인력을 구하기 쉽지 않다"고 했다. 질병관리본부의 과장급 이상 직원 대부분은 한 달 넘게 긴급상황센터와 보건복지인력개발원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비상근무를 하고 있다.

그럼에도 질본 직원들은 정 본부장의 리더십을 중심으로 똘똘 뭉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우한 코로나 감염증 확진자 4000명, 사망자 20명을 돌파하면서 "정부의 방역 실패"라는 비판도 나오지만 정 본부장을 필두로 한 질병관리본부에 대해서만큼은 의료계도, 여론도 응원을 보내고 있다.

광주광역시 출신으로 전남여고를 졸업한 정은경 본부장은 1989년 서울대 의대를 나와 가정의학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고 경기 양주군 보건소에 첫발을 내디뎠다. 1995년 질본의 전신인 국립보건원 연구관 특채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보건복지부와 질본에서 다양한 경력을 쌓는 과정에서 신종 감염병과 인연이 끊이지 않았다. 2009년 신종플루 유행 당시에는 복지부 질병정책과장이자 정부 대책본부 총괄팀장으로,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때는 질본 질병예방센터장이자 정부 대책본부 현장점검반장으로 브리핑에 나섰다. 2017년 최초의 여성 질병관리본부장이 된 그는 올해 1월 정부 중앙방역대책본부의 수장으로 또다시 브리핑 자리에 올랐다.

그 과정이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2016년 감사원은 메르스 사태 대응의 책임을 물어 당시 정은경 센터장 등 보건의료 분야 공무원 9명에게 중징계를 결정했다. 정 본부장은 정직 처분을 받았지만 이의제기 없이 감수하면서 묵묵히 자리를 지켰고 오히려 이런 모습이 의료계의 신뢰를 얻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뒤늦게 감봉으로 징계 수위가 낮아졌다.

정은경 본부장은 질본 직원들 사이에서도 꼼꼼한 일 처리로 유명하다. 한 질본 관계자는 "온화한 성격이지만, 경험이 많다 보니 아는 게 많고 정말 꼼꼼하다"며 "과장들이 본부장 결재를 받거나 보고하러 갈 때마다 생각 못 한 지점들을 물어봐서 당황할 정도"라고 했다. 일에 대해서는 엄격하고, 일벌레 기질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질본 직원은 "직원들보다 더 늦게 퇴근하는 날도 많아 소위 '워커홀릭'이다"라고 말했다.

정 본부장은 메르스 사태 때 자신에게 유사한 증상이 나타나자 직접 검체를 뽑아 검사해보고, 메르스가 아닌 것으로 밝혀지자 사흘 만에 업무에 복귀했다는 일화도 있다. 정은경 본부장은 최근 자신과 질본 조직에 대한 응원이 쏟아지자 직원들에게 "방역 당국이 고생한다고 조명해주는 것은 감사하다. 하지만 아직 현 상황 대응에 부족함이 많고 상황이 진행 중이다. 개인에게 관심이 쏠리거나 미담(美談)으로 포장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고 한다.

"국민의 신뢰와 보건의료 분야 리더십은 우리의 전문성에서 나온다." 2017년 그의 질본 본부장 취임사의 한 구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