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코로나 진단 키트의 절반 이상을 공급하고 있는 유전자 진단 시약 기업 '씨젠'의 천종윤 대표가 언론 인터뷰에서 "중국 우한 폐렴 확산 초기인 1월 16일 사내 회의에서 진단 시약 개발 제안이 나왔고 21일 개발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그로부터 2주 만에 제품 개발을 완료한 후 2월 12일 긴급 사용 승인을 따내 진단 키트 대량 공급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중소기업 씨젠의 대응은 정부 대응과 너무 대비된다. 씨젠이 진단 키트 개발에 돌입하기 3주 전인 작년 12월 31일 중국 우한 위생 당국이 '원인 불명 폐렴 27명 발생'이라고 산하기관에 통보한 내용이 인터넷에 공개됐다. 한국 질병관리본부(질본)는 1월 3일 대책반을 구성했다고 하지만 조치를 내린 것은 1월 9일 중국 보건 당국에 신종 바이러스 유전자 정보와 확산 추세를 알려달라고 요청한 것 정도다. 홍콩은 이미 1월 7일 우한 폐렴을 법정 전염병으로 분류하고 우한에서 들어오는 사람들을 격리하기 시작했다. 마카오 정부도 5일 보건 경보를 상향했고, 미국 질병통제센터(CDC)는 6일 '주의' 경보 조치를 발령했다. 우리는 1월 19일 우한에서 입국한 중국인 여성이 발열 증상으로 코로나 바이러스 검사를 받고 양성 판정을 받은 20일에야 감염병 위기 경보를 '주의'로 올려 방역대책본부를 설치했다. 이미 중국 내 확진자가 300명에 육박하던 시기다.

직원이 800명 있고 감염병 대책의 법적 권한을 지닌 질본에서 이제 막 방역망을 정비하고 나서던 시점에 씨젠은 이미 진단 키트 개발에 뛰어들었다. 천 대표는 "바이러스가 머잖아 한국으로도 퍼질 것으로 판단했다"고 했다. 중국 보건 당국이 1월 19일에도 "전염병 확산을 통제할 수 있다"고 했지만 씨젠은 믿지 않은 것이다. 중국은 2003년 사스 확산으로 17국 8000명이 감염돼 770명이 죽었을 때도 언론 보도를 통제하고 세계를 속이려 들었다.

더구나 한국서 1번 확진자가 나온 시기는 중국 춘제 연휴(1월 24~30일)를 눈앞에 둔 시기여서 전문가라면 수억 명의 이동으로 감염병이 걷잡을 수 없게 될지 모른다는 위험을 예상할 수 있는 시기였다. 그때라도 정부가 전면 비상을 걸어 중국 경유 입국을 통제하고 국내 코로나 확산에 대비한 방역과 진료 대비 태세를 정비했다면 지금 같은 사태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대통령은 되레 중국의 우한 봉쇄 사흘이 지난 1월 26일까지도 "정부를 믿고 과도한 불안을 갖지 말라"고 했다. 중소기업만도 못한 정부를 국민은 믿어야 하나.